“모습 한 번 보여 주소서.”
한국 팬들의 애절한 호소를 외면해 온 무대 예술가들은 누가 있을까. 21년 만에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두 번째 내한공연(11월 7, 8일)이 성사된 것을 계기로 공연기획자들 사이에서는 아직까지 한국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세계적 대가들이 누구인지, 조속한 시일 내에 내한 공연 가능성을 타진하는 작업이 부산하다. ‘내한만 한다면 그 자체가 한국공연 역사의 중요 이벤트’여서 ‘유치 0순위’인 예술가와 작품들을 알아본다.
○ 피아노: 폴리니 ‘낯선 도시는 싫어’
한국 무대를 외면해 팬들의 애를 태우는 클래식 연주가 중에는 유난히 피아니스트가 많다. 1970년대 이후 도이체 그라모폰(DG)레이블로 베토벤과 쇼팽 등 숱한 음반을 쏟아내면서 세계 피아노계의 스타로 군림해 온 이탈리아의 마우리치오 폴리니(63)가 그 대표 격. 이를 두고 항간에는 “공산당원인 폴리니가 1970년대 한국의 유신정권을 혐오해 이후 줄곧 한국 무대를 회피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폴리니의 일본 측 대리인인 ‘가지모토’사의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공연기획사 마스트미디어 김용관 대표의 설명. 폴리니가 청중을 유달리 까다롭게 고르는 편이고 최근에는 그 ‘증세’가 심해져 지금껏 공연해 본 일이 없는 낯선 도시의 무대에 서기를 거부한다는 것.
오스트리아의 알프레드 브렌델(74)과 헝가리의 안드라스 시프(52)도 내한무대를 갖지 않은 대표적인 대가급 피아니스트다. 1984년 13세 때 데뷔 연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천재 피아니스트로 떠오른 러시아의 예브게니 키신(34)은 2006년 4월 예술의 전당에서 독주회가 예정돼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 성악: 바르톨리 ‘전단까지 찍었는데…’
전 세계 메조 소프라노계를 평정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체칠리아 바르톨리(39)는 1997년 6월 갑작스러운 내한 취소로 큰 아쉬움을 남겼다. 당시 공연 안내 전단까지 제작하고 그의 내한을 기다렸던 공연기획사 크레디아의 정재옥 대표는 “비행기 여행에 공포증을 가지고 있어 거의 유럽무대에만 서 온 바르톨리가 어렵게 공연 제의에 응했다가 막판에 마음을 바꾸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등 테너계 ‘빅3’의 30여 년 독주를 종식시킬 차세대 주자로 손꼽히는 멕시코의 테너 롤란도 비야손(33)은 2006년경 체코의 소프라노 스타 막달레나 코제나(32)와 예술의 전당에서 합동 공연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 뮤지컬: ‘라이언 킹’ 등 대표적
뮤지컬 중에서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대작’으로 첫손에 꼽히는 것은 단연 ‘미스 사이공’과 ‘라이언 킹’. ‘미스 사이공’은 이른바 세계 4대 뮤지컬 중 유일하게 소개되지 않은 작품이다. ‘레미제라블’은 내한공연으로, ‘캣츠’와 ‘오페라의 유령’은 라이선스 뮤지컬로 먼저 소개된 뒤 내한공연이 이루어졌다. ‘미스 사이공’이 소개되지 않은 이유는 헬기가 무대에 등장하는 등 초대형 세트로 인한 제작비 부담 때문. 대표적인 가족 뮤지컬로 꼽히는 ‘라이언 킹’ 역시 제작비 때문에 국내 공연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장기공연이 가능한 뮤지컬 전용극장 확보가 가장 시급한 전제조건.
역대 토니상 최다 수상작(2001년·12개 부문)인 ‘프로듀서스’도 뮤지컬 팬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작품. 하지만 미국적 유머가 짙어 내한 공연보다는 한국화한 라이선스 공연이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내년 초 국내 배우들로 공연된다.
프랑스 뮤지컬 ‘십계’ ‘로미오와 줄리엣’, 라이브 음악에 맞춰 서커스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캐나다극단 ‘태양의 서커스’의 대표작 ‘퀴담’ 등도 국내에 소개되지 못한 명작으로 꼽힌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