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의 환호‘딸들의 반란’이 성공했다. 대법원은 20세 이상의 성인 남성만 종중 회원으로 인정해 온 기존 판례를 바꿔 성인 여성도 종중의 구성원이 된다고 21일 판결했다. 이날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자 소송을 냈던 청송 심씨 혜령공파의 심정숙, 신자, 경숙 씨(왼쪽부터)가 기뻐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여성의 종중(宗中) 회원 지위를 인정한 21일 대법원 판결은 올해 3월 호주제 폐지법안 통과와 함께 양성 평등의 이념을 실현한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된다. 또 ‘보수의 마지막 보루’라고 불려온 사법부의 변화를 시사한다.
▽판결의 의미=이번 판결의 핵심은 ‘변화된 여성의 지위’다.
대법원은 “남아선호 사상과 남성의 가계 계승이란 관념이 쇠퇴하면서 딸만을 자녀로 둔 가족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며 “딸을 아들과 함께 족보에 올리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고, 여성이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종중도 생겨나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관습’이 변하고 있는 만큼 부계(父系) 혈통을 근간으로 해온 종중의 존재 목적과 본질이 과거와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것.
다시 말해 종중에서 여성을 배제해야 할 명분이 사라졌다는 게 대법원의 해석이다. 게다가 이날 판결은 ‘출가외인’으로 불리던 기혼 여성의 지위를 확립해 줬다는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최종영(崔鍾泳) 대법원장, 유지담(柳志潭) 배기원(裵淇源) 이규홍(李揆弘) 박재윤(朴在允) 김용담(金龍潭) 대법관 등 6명은 판례 변경에 동의하면서도 “판례는 가입 의사를 밝힌 성년 여성도 종중 회원으로 인정하는 수준으로만 변경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별개 의견을 냈다.
종중이 우리 전통의 산물이란 점에서 전통문화와 현대 법질서의 조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변화 불가피한 종중=이날 대법원 판결로 성인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종중의 운영방식에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판결 직후부터 모든 성인 여성이 자신이 속한 종중의 회원 자격을 얻게 됨에 따라 종중은 총회, 대표자 선임, 재산처분 등의 행위를 할 때는 남성과 똑같이 여성을 참여시켜야 한다.
‘여성’의 범위엔 ‘결혼한 딸들’이 포함된다. 이런 조건을 지키지 않은 채 의결을 할 경우 그 의결은 소송을 통해 무효화될 수 있다.
종중의 명부라고 할 수 있는 족보 역시 손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상당수 종중이 남성 위주로 족보를 작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종중에서의 여성의 ‘역할’도 주문한 것으로 평가된다. 종중의 목적이 친목도모 외에 분묘 수호와 제사란 점에서다.
그러나 이번 판결의 구속력은 여성 종중 회원의 ‘지위’를 확인하는 데에만 국한된다. 용인 이씨 사맹공파 출가 여성 5명은 재산 분배와 관련된 과거 종중의 결정을 뒤엎을 수는 없다.
판결 이후부터 여성이 종중 회원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판결 이전의 종중 결정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판이 진행 중인 10여 건의 유사 소송의 경우에도 당시에는 종중 회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각’ 판결을 받게 된다.
▽소송 개요=용인 이씨 사맹공파 종중은 1999년 3월 경기 용인시 수지의 종중 소유 임야를 350억 원에 건설업체에 팔았다. 종중은 성년 남성에게는 1억5000만 원씩 지급했다.
하지만 출가 여성, 즉 ‘결혼한 딸’에게는 종중 회원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대신 증여 형태로 1인당 1650만∼5500만 원씩 차등 지급했다. ‘결혼한 딸들’ 5명은 종중회원 확인 등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청송 심씨 혜령공파 종중 여성 3명은 “공동 선조의 후손 가운데 성년 여성을 종중에서 배제하는 관습이 법질서에 어긋난다”며 종회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두 원고는 1,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