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한 가족 경영’의 대표기업이던 두산그룹이 형제들 간의 경영권 분쟁에 휩싸였다.
두산그룹은 이번 경영권 분쟁으로 박승직(朴承稷) 창업주가 ‘박승직 상점’의 문을 연 1896년 이후 109년 만에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 ‘형제의 난’ 왜 일어났나
21일 한국야구위원회(KBO) 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용오(朴容旿) 전 회장은 자신이 동생들의 비리를 밝혀냈기 때문에 ‘밀려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전 회장 측 인사가 이날 대검찰청에 제출한 진정서에는 박용성(朴容晟) 두산중공업 회장과 박용만(朴容晩) ㈜두산 부회장 등 그룹 일가가 20년에 걸쳐 1000억 원이 넘는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박용만 부회장과 박용성 회장의 아들인 박진원(朴신原) 두산인프라코어 상무가 800억 원대의 외화를 밀반출했다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박용곤(朴容昆) 명예회장 등 다른 일가와 두산그룹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그룹 관계자는 “박 전 회장은 지난해 말부터 두산산업개발을 차지하려고 시도했고 올해 들어 가족회의에서도 이 회사를 자기 가족 소유로 분리해 달라고 요구했다”며 “나머지 일가가 이를 저지하고 나서면서 불화가 커져 이 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산산업개발은 그룹의 모체 격인 ㈜두산의 1대 주주로 지분 22.8%를 보유하고 있다. 두산산업개발을 가지면 ㈜두산이 41.5%의 지분을 갖고 있는 두산중공업을 포함해 사실상 그룹 전체를 장악할 수 있게 된다. 박 전 회장은 두산산업개발의 지분을 갖고 있지 않으며 둘째 아들 중원 씨가 0.6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 두산그룹 승계방식 무너져
지금까지 두산그룹의 후계구도는 ‘장자 승계’를 기본으로 형제들이 과도기를 메워 주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가’ 방식을 택해 왔다. 이는 고 박두병(朴斗秉) 초대회장의 ‘공동 소유, 공동 경영’ 원칙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초대 회장의 장남 박용곤 명예회장, 그의 맏아들인 박정원(朴廷原)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으로 후계구도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현재 43세인 박정원 부회장이 총수를 맡을 때까지 박 명예회장의 동생인 박용오-박용성 회장이 차례로 회장 직을 맡는 것이 그룹 내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박 전 회장이 ‘가족회의’의 결정에 반발하고 나서면서 이 같은 승계방식이 무너지게 됐다.
○ 두산그룹 앞으로 어떻게 될까
사태 발생 후 두산그룹 임직원들은 박용곤 명예회장과 나머지 일가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박 전 회장이 그룹의 ‘전통’을 깨고 그룹 전체 임직원들의 명예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전 회장 측이 제출한 진정서를 검찰이 수사하게 된다면 수사결과에 따라 상황 반전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 검찰은 조만간 사건 담당 부서를 배당해 수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새 회장으로 내정된 박용성 회장이나 박용만 부회장이 박 전 회장의 주장대로 대규모 비자금을 조성하고 외화 밀반출 등에 연루된 것으로 나타나면 엄청난 ‘핵 폭풍’으로 작용해 재계 10위인 두산그룹 전체를 뒤흔들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