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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홍찬식]勝者 없는 대학과의 전쟁

입력 | 2005-07-22 03:12:00


대학입시를 앞둔 학부모들은 대학이 발표한 입시요강에 주목한다. 그 안에 입시경쟁을 뚫는 길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각 대학의 인터넷 페이지에 수록된 입시요강을 파악하는 일은 학부모들에게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상위권 대학으로 갈수록 요강이 복잡할뿐더러 알쏭달쏭하기까지 하다. 수학적 두뇌가 필요하고 통계용어도 이해해야 한다. 입시 컨설턴트라는 신종 직업이 돈을 버는 까닭을 알 만하다.

입시요강이 난해한 것은 정부와 대학 간 숨바꼭질의 산물이다. 정부는 입시를 계속 규제해 왔다. 대학들은 정부가 정해준 틀 안에서 우수 학생을 뽑기 위해 방법을 짜내다 보니 요강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발표된 입시요강도 겉과 속이 다르다. 어느 대학이 내신 반영률을 40%로 발표했다고 해서 그대로 믿어선 안 된다. 대학은 고교 성적이 부풀려져 있다고 보고 지원자 대부분이 내신 항목에서 만점을 맞도록 맞춰 놓는다. 이렇게 되면 내신은 당락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청소년에게 거짓을 가르치는 일이나 다름없지만 원인 제공자가 정부이므로 대학만 나무랄 수는 없다.

정부가 본고사 부활을 우려해 대학에 전면전을 선포했다. 논술시험이 본고사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사후심의제를 가동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의 ‘승산 없는 싸움’이 될 것이다. 대학이 낸 논술시험을 본고사로 제재한다면 그 유형을 피한 다른 논술이 등장할 것이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는 ‘두더지 잡기’ 게임과 같다.

정부가 대학을 아무리 몰아세워도 상위권 대학들은 우수 학생을 뽑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의 생존본능이다. 입시는 대학이 치르는 것이지, 정부가 하는 일이 아니다. 대학이 힘을 더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대학은 대학대로 입시에 발목이 잡혀 있다. 논술과 면접이 강화된 이후 교수들은 장시간 채점에 동원되고 있다. 1년에도 몇 개월씩 입시 업무에 매달려 있으니 연구는 언제 하고 학생은 언제 가르치는가. 이러고서 세계적인 대학 육성을 말할 수 있겠는가.

교육 문제의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공교육을 살리고 대학 경쟁력을 높이면 된다. 정부는 대학들이 본고사를 보지 못하게 막는 것이 공교육을 살린다고 확신하는 듯하다. 그러나 공교육 회복은 교사들이 학생을 잘 가르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열심히 학생을 지도해 좋은 진학 실적을 내는 학교에선 학부모의 불만이 없다. 서울대를 기득권으로 본다면 서울대를 ‘진압할’ 일이 아니라 큰돈을 써서라도 서울대를 능가하는 대학을 여러 곳 키우면 된다. 그렇게 되면 학벌주의와 입시 문제는 자동 해결될 것이다.

현재 정부가 대학을 상대로 벌이는 신경전은 소모적인 이데올로기 싸움에 불과하다. 설령 정부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싸움에서 이긴다고 한들 얻을 것은 없다. 이 정권이 만든 2008학년도 입시안에는 대학평준화 의도가 깔려 있다. 고교의 학력격차를 인정하지 않고 내신 입시로 가라는 주문이 그것이다. 정부가 대학을 때려 그 결과 대학마저 평준화된다면 이 나라 교육은 암담하다.

교육에서 경쟁력과 평등의 가치는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30년간 평준화 정책을 통해 평등 쪽에 너무 치우쳤다. 이제는 무게중심을 경쟁력 쪽으로 이동시켜야 맞다. 평등교육 전통이 강한 몇몇 선진국이 21세기 들어 교육경쟁력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입시 문제를 언급할 때가 아니다. 학생을 뽑는 일은 대학에 맡기고 정부는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