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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눈/후지와라 기이치]韓의 지역외교와 日의 동맹외교

입력 | 2005-07-22 03:12:00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한국과 일본이 처한 국제정치 환경에는 닮은 점이 있다. 두 나라 모두 동아시아라는 지역에 속해 있다. 또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라는 입장과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입장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는가가 외교정책의 주요 과제였다.

한국과 일본이 대외정책에서 정한 우선순위, 그리고 지역과 동맹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방식은 미국에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뚜렷한 차이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전후 일본 외교는 안전보장 측면의 미일 동맹과 경제외교 측면의 아시아 중시라는 양대 축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미군을 이용해 국방문제를 해결하고, 아시아를 해외시장으로 확보하는 노선이다. 그런데 일본 경제의 성장으로 미일 무역분쟁이 발생하면서 동맹과 지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안정된 미일 관계를 유지하려면 (아시아 국가와의) 경제외교는 다음 순위로 돌려야 하고, 경제대국이라는 지위를 지키려면 아시아 각국과 협력해 미국의 압력을 물리쳐야 한다.

한국은 대미 관계를 일본 이상으로 중시했다. 북한, 그리고 6·25전쟁 때 북한을 지원한 중국과 인접한 탓에 지정학적 필요성이 일본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다. 또 아시아 시장에 대한 진출이 일본보다 늦었기 때문에 경제외교라는 영역이 한국의 대외정책에서 중시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런 구도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역전됐다.

장기불황이 지속된 일본에서는 저개발국에 대한 원조액이 줄어들었고, 경제외교에 대한 관심도 쇠퇴했다. 반면 북한의 핵개발과 납치문제를 계기로 안전보장에 대한 관심은 전례 없이 높아졌다. 일본이 자위대를 이라크에 보낸 최대 이유는 ‘북한 위기’가 닥치면 미국이 행동에 나서 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구호는 등장했지만 한국, 중국과의 외교 협의는 크게 후퇴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에 대한 관심도 줄었다. 지역보다 동맹을 우선시하는 구도가 된 것이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경제적으로 성공했을 뿐 아니라 자본수출국의 대열에까지 들어선 한국을 향해 러시아와 중국은 높은 관심을 보였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중국 및 러시아와의 외교관계는 한층 깊어졌다.

이제 아시아 지역에서의 협력 중심은 일본에서 중국과 한국으로 넘어갔다고 봐도 될 것이다. 반면 한국의 대미 관계는 냉각됐다. 현재 워싱턴에서는 한국에 대한 불신을 숨기지 않는 외교관이 적지 않다.

한국과 일본의 외교정책에서 지역과 동맹의 우선순위가 바뀌었음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례가 북한 문제에 대한 대응이다. 북한의 핵개발과 일본인 납치문제는 일본 국내에서 대미협력을 한층 강화하는 이유가 됐지만, 한국 및 중국과 거리를 두게 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한국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이후 북한에 대해 위협을 느끼기보다는 남북대화와 통일 실현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일본에서 북한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악(惡)’의 중심이지만 그런 위협감을 한국의 언론 보도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 정부가 발표한 대북 전력지원 약속은 6자회담 재개를 실현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을 포함한 지역외교의 성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이 동맹보다 지역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경계하고 있고, 일본 외교는 지역보다 동맹을 우선시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대응을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이 다른 태도를 취하는 배경에는 그런 차이가 있는 것이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