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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포커스]“‘준비된 가족’에 행복이 온대요”

입력 | 2005-07-22 03:42:00


《이젠 가족도 자격증을 따야 하나?

통계청의 ‘2004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3만9365쌍이 이혼했다.

가파르게 상승하던 이혼율은 전년도보다 다소 감소했으나 여전히 아시아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최근 대학 연구소와 사설 상담소, 종교단체가 진행하는 ‘바람직한 부모와 부부 되기’ 등 가족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경기 안양시는 9월 예비부부들을 대상으로 ‘결혼 면허교실’을 개설하고, 이 과정을 마친 사람에게 ‘결혼 면허증’을 발급하기로 했다.

대가족 시대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던 ‘가족 교육’이 산업화 핵가족 시대를 맞아 사회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이른바 ‘가족 자격증’이라도 생길 것 같은 분위기다.》


○ 부부, 부모는 아무나 되나요?

미국의 부부상담전문가 댄 와일 씨는 “배우자를 고르는 것은 한 세트의 문제 덩어리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30대 초반으로 결혼 3년째인 강모 씨는 요즘 남편과 부모의 역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는 외국계 컨설팅 회사의 컨설턴트로 보통 밤 12시가 넘어 퇴근한다. 그의 부인 김모 씨도 홍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부부가 한 살배기 딸과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주말뿐. 강 씨는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일요일에 딸을 데리고 외출하는 대신 집에서 쉬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부인의 생각은 달랐다. 딸을 위해 주말에 집에만 있을 수 없다는 것. 갈등 끝에 이 부부는 자신들의 성장 환경이 다른 게 싸움의 한 원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아버지가 주말에 외출을 잘 안하셨던 반면 장인 어른은 매주 가족여행을 다녔다고 합니다. 당연히 서로가 기대하는 아버지상이 다를 수밖에요.”

○ 남편의 가출 선언

부부 사이 또는 부부와 자녀 간 갈등으로 상담을 받는 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한국결혼지능연구소’에서는 하루 10여 건의 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젊은 부부의 발길이 잦다.

“두 딸을 둔 결혼 8년차 주부입니다. 갑자기 남편이 ‘집을 나가고 싶다’고 말해 고통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26세의 직장인입니다. 나이 드신 부모님이 이혼하겠다고 합니다. 자식된 입장에서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이 연구소 부소장 김준기(43) 씨는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에서는 부부와 부모의 다양한 역할을 학습할 수 있었으나 핵가족 시대에는 대부분 부모와 자신의 관계를 통해서만 가족의 모습을 배우기 때문에 다양한 가족 역할을 수행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 부모 되기를 배우는 학생들

고려대의 ‘부모 되기 교육’은 지난 학기 3개 강의에 340여 명이 수강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남학생이 전체의 40%였고 ‘캠퍼스 커플’의 비율이 30%대였다는 점에서 최근 젊은 층의 고민과 관심을 동시에 보여 준다. 수업은 아이가 태내에서 성장하는 과정부터 유아기 아동기 청년기 성년기에 나타나는 특성과 부모의 역할로 구성돼 있다.

이 강의를 수강한 김명원(22) 씨는 “가정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데 막상 이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며 “가족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또 앞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새로운 배움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한 학생은 상담에서 “아버지가 귀가하시면 어머니는 ‘다녀왔어’라고 한 뒤 TV 드라마를 보고, 나도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며 “혼자 식사하는 모습이 안돼 보였지만 아버지는 늘 멀고 무서운 존재”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학생 상담 사례에서는 부자(父子) 간 갈등이 가장 많았다. 어머니가 오랜 기간 자녀와 함께 생활하면서 적응해온 반면 대부분의 아버지는 가족과 소통하려는 노력도 부족하고, 그 방법도 모른다는 게 이 강좌를 맡고 있는 정순화(50·가정교육학) 교수의 진단이다. 부녀(父女) 갈등도 아버지가 그리는 여성상과 딸의 모습에서 일어나는 괴리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정 교수는 “학생을 포함한 대부분의 성인들이 결혼과 가정 자체에 무지하다”며 “최근 증가하고 있는 가정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가족 생활에 대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결혼하고 출산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부부 되기를 배우다

전문가들은 부부나 부모 되기 교육을 일종의 ‘예방접종’으로 표현했다.

외국에서는 대학부설연구소, 교회, 사설 상담소 등 여러 기관에서 이 같은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PET(Parent Effectiveness Training)’, ‘STEP(Systematic Training for Effective Parenting)’ 등. 이들 기관은 결혼한 뒤 남편과 아내에게 이전과 다른 모습이 요구되기 때문에 재교육은 필수라고 한다.

“실제 연구 결과를 보면 부부 관계는 성적 매력을 넘어 애착이 생겨야 잘 유지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느끼게 하는 외부 요건들은 길어야 1, 2년입니다. 의학적으로나 실제로나 첫 아이가 태어난 뒤 서로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떨어지는데, 그 때문에 관계 유지를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김 부소장)

정 교수는 “싱가포르 대만 등은 결혼신고에 앞서 예비 부부 교육 강좌의 수강을 의무화하고 있다”며 “가속화하고 있는 한국 가족의 위기에 안이하게 대응한다면 심각한 사회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송하림(고려대 신문방송학과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