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주 법원 최초의 한국계 판사인 대니 전 씨. 그는 “피고인의 인권과 사회의 안전 문제에서 균형을 잘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주 기자
“어떤 사람이 대법관이 되죠?”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대법관 샌드라 오코너 판사에게 사람들이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The right person at the right spot in the right time(그때 그 장소에 그 사람이 있어야 한다).”
풀어서 쉽게 설명하면 이런 뜻이다. ‘준비된 사람이, 대법관이 필요할 때, 자격이 있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대법관은 고사하고 일반 법원의 판사가 되는 것도 무척 어렵다. 소수 민족 출신으로 판사가 되는 일은 더 어렵다.
대니 전(전경배·43) 씨. 그는 뉴욕 주 법원 최초의 한국계 판사다. 그가 지난달 28일 한국에 왔다. 가족들과 함께 휴가차 조용히 왔지만 그는 거의 쉬지 못했다. 한국의 법조인들이 그를 조용히 쉬도록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의 판사들을 상대로 미국의 형사소송 제도와 한국의 사법개혁 등을 주제로 강연회와 간담회를 갖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다 14일 출국했다. 출국 직전 그를 본사로 초청해 단독 인터뷰를 했다. 무엇보다 어떻게 그 자리에 올랐는지 궁금했다.
“2003년 가을 뉴욕 주 법원에 사건이 밀려들면서 강력사건 재판을 맡을 판사가 부족했습니다. 저는 당시 뉴욕 시 형사법원에서 강력사건 재판을 주로 맡고 있었죠. 그때 제가 적임자로 주지사의 눈에 띄어 주 법원 판사로 임명된 것 같습니다.”
때와 장소가 잘 맞은 셈. 그러면 어떻게 ‘준비된 사람’이 되었을까.
“1987년 로스쿨을 졸업하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로펌(법률회사) 대신 검사를 택했습니다. 일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죠. 근무지는 뉴욕 맨해튼 검찰청이었는데 처음부터 살인 마약 등 동료 검사들이 기피하는 사건을 자원했습니다. 그때 뉴욕 시 검사장이 루돌프 줄리아니 씨였는데 그분이 뉴욕 시장이 되어 저를 뉴욕 시 형사법원 판사로 임명했습니다.”
―뉴욕 시 한복판에서 검사를 12년간 했으면 끔찍한 사건도 많이 겪고 위험한 상황도 많이 마주쳤을 것 같은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1997년 뉴욕 시내에서 벌어진 마약조직 간의 총격 사건이었습니다. 젊은 청년이 총탄 18발을 맞고 숨졌는데 현장에서 목격자를 두 명 확보했습니다. 나중에 재판이 진행될 때 한 명은 도피하고 한 명만 법정에 나왔는데 그 증인도 범인을 보았다는 진술을 번복했죠. 당시 총알이 관통한 피해자의 성기까지 촬영해 배심원들에게 보여줬는데 결국 무죄평결이 내려졌습니다.”
전 판사는 “미국 배심 재판에서는 무죄 비율이 25%에 이른다”고 말했다. 자신이 보기에 명백한 범인인데도 무죄평결이 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무죄 비율이 1% 남짓하다. 무죄 비율이 높다는 것은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피고인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형사사법의 원칙에 더 충실하다는 증거 아닐까?
“글쎄요…. 인권도 존중해야 하지만 범죄 없는 상태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은 질서와 안전이 잘 보장된 사회입니다. 피고인의 인권과 사회의 안전 문제는 그 어딘가에 밸런스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잘 찾아내는 것이 참된 개혁이 아니겠습니까.”
―판사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2002년 유명한 포르노 잡지 ‘스크루 매거진’ 발행인인 앨 골드스타인의 여비서 성희롱 사건 재판을 맡았습니다. 재판이 진행 중일 때 피고인이 TV 인터뷰를 하면서 나를 두고 ‘중국식당에서 접시나 나르라’고 비꼬았죠. 내가 중국계가 아니라 한국계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세탁소에나 가라’고 했습니다. 무척 화가 났지만 법정에서 화를 내지는 않았죠. 분노 대신 웃으면서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를 만난 한국 법조인들은 두 번 놀란다. 우선 한국의 전문적인 법률용어를 너무 잘 구사한다는 것이다. 검찰조서, 증거능력, 증명력, 탄핵…. 비결을 물어보았다.
“나를 만나는 분들은 내가 미국 법을 가르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내가 그분들에게서 한국 법을 배웁니다.”
자신이 경험한 미국의 법 현실과 자신이 관찰한 한국의 법 현실에 대해 너무도 진지하고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도 한국 법조인에게는 놀라움이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는 “대한민국 사회의 ‘웰빙’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우문(愚問)을 하나 더 던졌다.
―당신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입니까.
“모국(母國)이죠.”
▼대니 전 판사는…▼
△이름: 대니 전(Danny K. Chun). 한국 이름은 전경배
△1962년 서울 출생, 1973년 서울 우이초등학교 6학년 때 미국 이민
△1984년 존스홉킨스대 졸업(정치학 및 철학 전공)
△1987년 뉴욕 포댐 로스쿨 졸업
△1987년 뉴욕 맨해튼 지방검찰청 검사로 임관(맨해튼 최초의 한국계 검사). 12년 동안 강력범죄, 아시아계 조직범죄, 성범 죄 수사 등을 전담
△1998년부터 뉴욕 시 형사법원 감독관으로 검사들에 대한 지도 담당
△1999년 뉴욕 시 형사법원 판사로 임명(한국계 최초)돼 브루 클린 킹스 카운티 형사법원에서 형사 사건 담당
△2003년 뉴욕 주 법원 판사로 임명돼 중죄 사건 담당(한국계 최초·유일)
이수형 기자 so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