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은 24일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녹취록을 통해 1997년 삼성 측의 대선자금 제공에 개입한 것으로 나타난 홍석현(洪錫炫) 주미 한국대사를 자진사퇴 형식으로 퇴진시키기로 입장을 정리하는 등 파문 수습에 나섰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이날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안기부 녹취록 파문의 해법은 청와대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며 "홍 대사가 스스로 알아서 그만둘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여권의 다른 핵심 관계자는 "녹취록 파문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만큼 여론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홍 대사의 퇴진이 불가피하다는 게 여권지도부의 판단"이라고 전했다.
이에 앞서 열린우리당 장영달(張永達) 상임중앙위원은 23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홍 대사가 대사 역할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며 "홍 대사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게 가장 현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같은 당 문석호(文錫鎬) 제3정책조정위원장은 24일 기자들과 만나 "이 정도까지 나왔으면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며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정장선(鄭長善) 제4정조위원장도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홍 대사 스스로 빨리 녹취록 내용의 사실관계를 밝히고 거취를 결정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25일 오전 김우식(金雨植) 대통령비서실장 주재로 정무(政務) 관계 수석비서관 회의를 열어 홍 대사 문제를 집중 논의한다. 이 회의에 이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주재로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회의가 열릴 예정이어서, 노 대통령은 참모들의 건의를 수용하는 형식을 빌려 홍 대사의 거취 문제를 정리할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는 23일까지만 해도 "홍 대사의 거취 문제는 '사실 확인'을 거친 뒤에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으나 기류 변화가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