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이나 지방의 주요 정책에 대해 주민이 직접 의사를 결정토록 하는 주민투표법이 지난해 1월 시행된 이후 전국에서 처음으로 27일 제주에서 주민투표가 실시된다. 이번 투표에서는 행정체계를 현행대로 ‘1도(道)-2시(市)-2군(郡)’으로 유지하는 ‘점진적 대안’과 ‘1도(道)-2통합시(시장은 임명)’로 바꾸는 ‘혁신적 대안(단일광역자치안)’을 놓고 택일한다.》
투표 결과는 ‘제주특별자치도’ 추진과 맞물려 있는 데다 앞으로 △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 유치 주민투표 △충북 청주시-청원군 통합 주민투표 등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어서 정부에서도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투표일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제주 도민들은 투표에 별로 관심이 없는 분위기다. 시군 통합으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제주도 공무원들과 나머지 4개 시군 공무원 간에 힘겨루기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누구 뽑는 선거냐?”=24일 오전 제주 북제주군 한림항. 조업을 마치고 어선에서 내린 이모(63) 씨는 주민투표에 대해 묻자 “누게 뽑는 거라(누구 뽑는 거야), 북제주군수 보궐선거 햄서(하느냐)”라고 말했다.
행정계층구조 개편에 대한 주민투표를 지난달 사망한 북제주군수의 보궐선거로 착각한 것.
제주도 곳곳에 주민투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리고 공고문이 나붙었지만 정작 주민들의 참여 열기는 살아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일부 읍면동 공무원들은 시군 공무원 수가 줄 것으로 예상되는 ‘혁신적 대안’에 반대하기 때문에 은근히 ‘투표 무산’을 바라는 눈치다. 일부러 현수막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걸어 놓는 경우도 있다.
남제주군 택시운전사 김모(41) 씨는 “주민들에게 어떤 혜택이 있는지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도와 시군이 서로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처럼 주민투표를 둘러싼 도-시군 간의 갈등, 아리송한 행정용어 등이 주민들의 무관심과 냉소적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투표율 관심=투표 참여가 낮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개표 결과보다는 투표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영교(吳盈敎) 행정자치부 장관은 22일 제주에서 “투표율이 50%를 넘어야 제주도민 의사가 어느 정도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환(金泰煥) 제주지사도 이날 호소문을 통해 “투표율은 ‘참여 자치’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라며 “투표율이 떨어져 개표조차 이뤄지지 않는다면 도민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게 된다”고 강조했다.
투표 수가 투표권자 총수(40만2003명)의 3분의 1에 미달하면 개표는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 선거와 달리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투표 참여를 독려할 수 없는 실정이다.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공무원이 조직적으로 투표를 권유할 때는 법에 저촉된다는 유권해석이 내려졌다”고 밝혔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꿈같은 첫 투표권… 이젠 어엿한 제주주민”▼
“한국에서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제주화교협회 송푸린(宋福臨·56·사진) 회장은 27일 제주지역에서 실시되는 주민투표에 참여하는 소감을 이처럼 밝혔다.
외국인이 국내 투표에 참여하는 것은 사상 처음. 지난해 1월 제정된 주민투표법은 영주권(F5비자)을 갖고 있는 20세 이상 외국인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했다.
송 회장은 “동료들과 회식을 하며 숙원이 이뤄진 기쁨을 함께 나눴다”며 “이제야 비로소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번 주민투표에 참여하는 외국인 영주권자는 모두 114명. 이 가운데 일본국적 3명을 제외한 111명이 화교로 파악됐다.
송 회장은 “이전 선거 때는 후보가 누군지, 내용이 뭔지 관심조차 없었다”며 “요새는 주민투표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귀가 쫑긋해진다”고 말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