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수 경제부 차장
몇 주 전 토요일에 가족과 안면도에 갔다. 송림도 좋고 바다도 좋다고 해서 떠났는데 서해안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전부터 막혀 도로에서만 8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차 안에 쓰러져 잠이 들었고 어른들도 녹초가 됐다.
그 전 주말엔 경기도의 놀이공원을 찾았다. 사람이 하도 많아 놀이기구 앞에 줄선 것만 2시간. 몇 시간을 달려 놀이공원에 가서 몇 시간 동안 겨우 놀이기구 하나 타고 다시 몇 시간을 달려 집에 돌아왔다.
이래서는 안 되지…. 전략을 바꿨다. 주말에 아이들과 서점도 가고,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자. 마찬가지였다. 광화문 대형서점은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쇼핑센터 역시 사람 때문에 걷기가 힘들었다.
주5일 근무제가 본격화되면서 보낸 몇 번의 연휴는 이렇게 참담했다. 나만 그런가? 아니었다.
문화관광부가 작년부터 주5일 근무를 한 수도권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최근 조사한 설문 결과도 비슷했다.
여가활동에 대해 57%가 ‘매우 불만족’하거나 ‘불만족’했다. 이유로는 시설 부족, 교육기관 부족, 교통문제 같은 여가자원 부족이 29.7%로 가장 많았고, 피곤하거나 귀찮아서와 같은 심리적 신체적 방해요인이 19.9%로 그 다음이었다.
마음은 오지 탐험, 패러글라이딩, 자기 계발로 달려가는데 정작 몸은 낮잠, TV 시청, 음주로 가는 것을 이 조사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긴 주변의 지인들만 봐도 그렇다. 금요일 회식하고 토요일 대낮까지 자거나, 주말만이라도 가족에게 봉사하라는 부인의 등쌀을 피해 사우나로 직행하는 사람, 주말에도 회사에 나가는 일 중독자 등등….
외국인 친구들은 한국인의 여가문화가 이상하다고 한다. 미혼자나 기혼자나 왜 죄다 여름에 휴가를 가느냐. 주말에는 왜 그렇게 복작거리며 장거리 여행을 떠나느냐고 한다. 서양에서는 정기휴가를 1년 내내 서로 돌아가면서 가고, 주말에는 취미에 몰두하거나 친구들과 파티를 한다는 것이다.
황금 같은 주말을 자동차 안에서 보냈다고 하면 ‘여가에 대한 상상력 빈곤’ 때문이라며 은근히 힐난한다. 주말에 집에 있어봤자 부부싸움만 한다며 사무실에 나가 동료들과 술 마시는 사람도 있다고 하면 외국인들은 뒤로 넘어간다.
평생 공부와 일 외에는 의미 있는 것, 재미있는 것을 해보지 못한 한국의 중장년은 늘어난 휴일 앞에 난감하기만 하다. 여가를 위한 사회인프라도 부족하지, 휴(休)테크 노하우도 없지….
이번 주말엔 또 뭘 하나. 코앞에 다가온 여름휴가는 어떻게 보내야 할까.
노는 것도 경쟁력이라는데….
신연수 경제부 차장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