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상품개발팀 회의실에서 직원들이 컴퓨터를 보며 상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윤태웅 부실장, 유유정 과장, 최재열 실장. 회의실에는 ‘월드 클래스 경쟁력의 핵심은 상품이다’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 사진 제공 신한은행
은행 상품은 고객과 은행이 만나는 접점이다.
은행들은 예금, 대출, 지수연동 상품 등을 한 달에도 각각 2, 3개씩 쏟아낸다. 단순해 보이는 예금 상품도 시장조사와 트렌드 연구를 거쳐 시장에 나온다. 이 상품들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25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신한은행 상품개발실 회의실. 직원 9명이 새 예금 상품에 대해 한창 토론 중이다.
“이 상품은 주부들이 타깃인 만큼 건강진단이 상품에 포함돼야 합니다. 참살이(웰빙) 트렌드에도 맞고….”
“건강진단까지 들어가면 상품이 지저분해 보이지 않을까요. 수익성도 떨어지고.”
“아닙니다. 요즘 주부들이 얼마나 건강에 관심이 많은데요. 넣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상품기획을 총괄하는 윤태웅(尹泰雄) 부실장은 “은행 상품도 결국 개인 경험의 소산”이라며 “수익성도 고려하지만 지금의 트렌드를 얼마나 반영하느냐가 기획 단계에서는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2003년 1월 국내은행 중 처음으로 상품개발 조직을 분리해 상품개발실을 만들었다. 여신, 수신, 외환, 파생 상품 전문가들이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내보겠다는 의도였다. 은행 출입카드가 있어도 비밀번호를 모르면 출입이 불가능할 정도로 비밀스러운 부서다.
트렌드를 반영하기 위한 노력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에디슨 보드’라는 사내 아이디어 보드를 만들어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받는다. 윤 부실장은 하루에도 수십 개의 컨설팅 보고서와 신문을 읽는다. 다른 은행의 상품을 연구하는 것도 일이다. 고객 120명과 직원 24명을 선정해 조언을 받기도 한다. 파생상품을 담당하는 유유정(劉有貞) 과장은 매일 세계 각국의 주가 지수와 원자재, 금값 등을 체크한다.
사실상 은행의 상품 개발비용은 많지 않다. 무형의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큼 스트레스도 크다.
윤 부실장은 “차라리 손에 잡히는 제조업체 상품을 개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상품이 다양하고 경쟁이 치열해 목표 액수만큼 팔기도 힘들다. 예를 들어 4년 전 내놓은 정기예금 상품은 1조 원을 파는 데 한 달이 채 안 걸렸다. 하지만 요즘에는 보험, 투신, 카드 상품까지 은행에서 팔기 때문에 수신이나 대출 상품은 상대적으로 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이나 SC제일은행 등 외국계 은행의 상품 공세도 경쟁을 부추긴다.
하지만 최재열(崔宰烈) 상품개발실장은 “한국시장에서의 노하우는 우리가 낫다”면서 “오히려 우리의 비밀이 새어나갈까 두렵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을 갖고 있다.
오전에 개발 중인 상품을 체크하고 트렌드 공부를 한 윤 부실장은 오후에는 주로 외부 사람들을 만난다.
지난주에도 임대아파트가 분양이 안 된다며 공동으로 상품을 만들어 보자는 부동산 업자, 신한은행의 상품개발 노하우를 정부 시책에 이용해 보려는 정부 관료 등을 만났다.
상품이 아이디어에서 시장으로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3개월. 하지만 시판 이후 관리와 마케팅이 상품 성공의 70%를 좌우한다.
“항상 귀를 열어두고 상품에 대해 말을 많이 해야 해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저녁에 퇴근할 때쯤에는 항상 목이 잠긴답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