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휴가 간다는 소리도 못 하고 근무에만 매달리고 있어요. 조종사들도 운항 규정에서 정한 13시간의 하루 비행시간을 다 채우고 있습니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 파업이 25일로 9일째 맞고 있으나 노사 양측이 협상을 거부한 채 장기전 태세로 돌입하자 사내 직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휴가철 성수기를 맞아 더욱 바빠진 공항 현장에 투입된 항공기 승무원과 직원들은 휴가를 반납한 채 항상 대기 상태다. 전체 조종사 826명 가운데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400여 명의 근무 강도는 평소의 2배에 이를 정도로 ‘강행군’의 연속이어서 안전사고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
동남아시아 등 3∼5시간짜리 중거리 노선을 주로 운항하는 A 기장은 17일 시작된 전면파업 이후 그동안 하루만 쉬었다.
그는 “평소 나흘에 한 번 쉬었지만, 요즘 닷새에 하루씩 쉬고 있어 입술이 터질 정도로 피로도가 심하다”며 “이로 인해 비행에 나서면 ‘꺼진 불도 다시 보는’ 심정으로 계기판을 두세 번 점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현장의 조종사들은 일본 중국 등 짧은 거리를 운항할 때 하루 왕복은 필수이고 운항을 마치더라도 거의 쉴 틈도 없이 다른 노선에 투입되는 ‘멀티 근무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아시아나항공의 운항 편수는 매일 280편 안팎이었지만, 요즘 국내 내륙노선을 모두 결항시켰기 때문에 180편가량으로 줄어들었다.
아시아나항공 운항관리팀 윤중근 부장은 “당초 예상보다 결항률이 높아지고 있지만 성수기 동안 현재의 수준은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항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타협을 거부한 채 극한 대결로 치닫는 노사 양측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간부급으로 일하는 B 씨는 “노사가 안전운항을 명분으로 자신들의 잇속 챙기기만 하고 있다”며 “특히 연봉 1억 원대의 고액 노동자가 휴가지를 전전하며 투쟁하는 모습은 같은 노동자로서 수긍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아시아나항공 노조는 “사측은 우리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 주장은 안전 운항을 보장받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국민 불편과 회사 손해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하루 빨리 파업을 푸는 게 우리의 기본 주장”이라며 “사측이 보다 적극적으로 교섭에 나설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천=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반도체 등 IT제품 월말 수출차질 비상▼
LG전자는 21일에 이어 26일에도 독일로 향하는 화물용 임대 전세기를 띄운다. 조종사 노조 파업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운항이 차질을 빚자 100t에 이르는 디스플레이 제품을 수출하기 위한 조치다. 임대 전세기를 띄우려면 비용이 5%가량 더 든다.
수출업계와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월말 수출에 비상이 걸릴 전망이다. 반도체, 휴대전화 및 부품,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 등의 수출은 매달 25∼30일에 월간 물량의 35∼40%가 집중되기 때문.
수출업체들은 대부분 대한항공, 노스웨스트 등 다른 항공 화물편으로 옮겨 싣거나 화물용 임대 전세기를 띄우고 있지만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무역협회 김길섭 화주(貨主)지원팀장은 “한 전자업체는 유럽으로 가는 물량을 타이항공을 통해 싱가포르를 거쳐 보내고 있다”며 “항공을 이용하는 수출품목은 대부분 제품 사이클이 짧아 수출이 2, 3일만 늦어져도 문제”라고 말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