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의 대사가 모두 유고(有故) 상태에 빠졌다. 밑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위기(crisis)이다.” 홍석현(洪錫炫) 주미 대사의 사의 표명과 관련해 미국 행정부의 한 관계자가 26일 한 말이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도 “이렇게 빨리, 이런 모양새로 물러난 주미 대사는 없었다”며 곤혹스러워 했다.》
▽주미 대사, 사실상 공석 상태=청와대는 사의를 표명한 홍 대사가 현재 진행 중인 주미 대사로서의 업무를 마무리하는 대로 적절한 시점에 그의 사표를 수리하기로 했다.
그때까지 홍 대사는 형식적으로만 대사직을 유지할 뿐 정상적인 대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홍 대사의 사퇴는 26일 개막한 제4차 6자회담 및 한미 간의 현안을 조율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6월 한미정상회담을 전후해 이미 한미 간의 주요 현안에 대한 조율이 어느 정도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6자회담이 장기화하거나 한미 간에 다른 현안이 불거질 경우 주미 대사 부재에 따른 외교적 부담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주미 대사는 6자회담 전(前) 단계에서 미국과의 물밑 조율역할을 맡아왔기 때문에 회담이 열린 지금은 당장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회담의 진척 상황에 따라 조율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만큼 앞으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공교롭게도 주한 미국대사 역시 4개월째 마크 민턴 대사 대리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전 대사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로 발탁된 뒤 후임 대사가 아직 부임하지 않았기 때문.
알렉산더 버슈보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의 공식 임명절차가 아직 시작되지 않아 그의 부임은 올해 말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후속 절차는=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홍 대사의 사표를 정식으로 수리할 시점이 언제라고 못 박기는 어렵다”며 “그러나 마냥 오래 끌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후임 대사 인선은 다음 달 초쯤 윤곽이 잡힐 것이라고 한다. 주미대사의 중요성을 감안,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직접 인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홍 대사가 사직서를 제출하고 노 대통령이 이를 수리하면 홍 대사는 대사로서의 지위를 잃게 된다. 홍 대사는 26일 오전 워싱턴에서 기자들과 만나 “후임 대사가 올 때까지 북핵 6자회담 등 주요 현안을 최선을 다해 마무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후임 대사가 정식 부임할 때까지 전임 대사가 책임공관장으로서의 직분을 유지하는 일반적 외교 관례를 의식한 언급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교부 측은 홍 대사의 경우는 일반적인 대사 교체와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공식 면직 이후 후임 대사 부임 때까지는 위성락(魏聖洛) 현 정무공사가 대사 대리로서 현지 공관을 대표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홍 대사는 정식 사표가 수리되더라도 미국에 머물 때까지는 일반적인 외교적 예우는 받게 된다.
▽홍 대사의 향후 거취는=홍 대사가 대사직에서 물러나 귀국하면 다시 중앙일보의 경영진으로 복귀할지가 주목된다.
홍 대사는 올해 2월 주미 대사 임명장을 받은 뒤 외교부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나는 다시 돌아온다는 심정으로 떠나지만 아마 발행인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귀국 후 1997년 삼성 측의 대선자금 제공 문제와 관련해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는 등 험난한 처지에 빠질 수도 있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