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한 ‘X파일 열쇠’… 왜?국가안전기획부에서 특수 도청을 담당했던 전 미림팀장 공운영 씨가 26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자택에서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복부를 흉기로 4번 찔러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병원 측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밝혔다. 성남=연합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불법도청 내용을 담은 이른바 ‘X파일’은 특수도청을 담당했던 전 안기부 미림팀장 공운영(58) 씨가 보관했던 자료로, 재미교포를 통해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공 씨는 26일 이 같은 내용의 자술서를 딸(29)을 통해 공개했다. 공 씨에게서 도청자료를 건네받았던 재미교포 박모(58) 씨는 이날 오전 미국으로 출국하려다 인천국제공항에서 국정원에 연행됐다.
▽도청자료 유출 경위=공 씨는 이날 자술서를 통해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부터 도청 테이프를 밀반출해 보관했으며 이 자료가 박 씨를 통해 MBC에 유출됐다”고 밝혔다.
공 씨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취임 직후 함께 직권 면직된 임모(58) 씨로부터 박 씨를 소개받았다고 밝혔다.
A4용지 13쪽 분량의 자술서에서 공 씨는 “박 씨가 삼성 측에 사업을 협조 받을 일이 있으니 내가 보관 중인 문건 중 삼성과 관련이 있는 몇 건만 잠시 활용하자고 제안해 자료를 박 씨에게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공 씨는 이어 “박 씨와 삼성과의 협상이 여의치 않다는 결과를 듣고 즉시 문건을 돌려받고 다시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서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몇 개월 후 박 씨가 삼성을 협박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 박 씨를 만류했으며, 그동안 보관했던 문건과 테이프 200여 개는 국정원 감찰실 요원에게 반납했다고 공 씨는 주장했다.
공 씨는 “최근 MBC 기자가 만나자고 했으나 쫓아버린 적이 있다는 연락을 임 씨로부터 받고 박 씨가 다시 문제를 촉발시키려 한다는 의도를 감지하고 있던 터에 최근 문제가 일파만파 발전되는 것을 보고 (자료를 유출한 사람이) 박 씨라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박 씨 연행 및 공 씨 자해 소동=박 씨는 이날 오전 11시경 인천국제공항에서 미국 시애틀로 출국하려다 국정원에 임의동행 형식으로 연행됐다.
국정원은 도청 테이프의 유출 및 삼성에 대한 협박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박 씨에 대해 하루 전인 25일 출국금지 조치했다. 박 씨는 MBC의 취재 및 카메라 기자 2명과 함께 출국하려던 중이었다.
박 씨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1999년 (도청 녹취록) 문건을 가져다 줬다”고 말했다. 공 씨는 이날 오후 5시경 자신의 딸을 통해 자술서를 공개한 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자신의 아파트 거실에서 흉기로 배를 찔렀다. 그는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서창희·徐昌熙)는 참여연대가 X파일과 관련해 고발한 사건을 이날 배당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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