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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주미대사 사의]洪대사 “긴 얘기할 기회 있을것”

입력 | 2005-07-27 03:07:00


“나중에 조용해지면 긴 얘기를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홍석현(洪錫炫) 주미 대사는 사의를 표명한 지 하루 만인 26일 오전(미국 시간) 워싱턴 대사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특파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X파일’ 공개 나흘 만이다.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한 듯 특파원들이 심경을 묻자 그는 웃으면서 “담담하다. 얼굴 좋지 않으냐. 오히려 특파원 여러분이 고생하셨다”고 위로하기도 했다.

홍 대사는 이어 “이번 일이 우리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가는 기폭제가 됐으면 좋겠다”며 “이번 일로 많은 국민의 가슴에 상처를 남긴 것 같아서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대국민 사과를 연상시키는 발언이었다. “상처받은 분들에게는 용서를 구할 뿐이다”라는 말도 했다.

MBC가 X파일을 처음 공개한 직후인 21일 오전과 오후, 그리고 22일 아침만 해도 홍 대사는 여유를 보였다.

국제경제연구소(IIE) 오찬은 물론 학계 인사들과의 오후 면담 일정도 모두 소화했다.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MBC가 오후 9시(미국 시간 22일 오전 8시) 뉴스를 통해 홍 대사의 실명을 공개하면서 홍 대사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여권 내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여권으로서는 초기의 신중론을 계속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청와대는 ‘즉각 경질’과 같은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중앙일보 회장을 내놓고 주미 대사를 맡은 홍 대사를 ‘내치는 식’의 경질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열린우리당 쪽에서 총대를 메고 나서는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 다음날인 23일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이번 사안은 대통령이 결정하기 어렵다. 홍 대사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며 압박에 나섰다.

여당 지도부에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인사권 문제에 직접 관여하는 양상이 벌어졌고, 이 때문에 청와대에서도 모양새를 어떻게 갖출 것이냐는 문제만 남았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홍 대사가 부인과 함께 워싱턴 근교에 머무르고 있던 지난 주말 국내에서는 홍 대사의 거취 문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열린우리당 문희상(文喜相) 의장이 25일 공개적으로 자진사퇴를 거론하고 나섰다. 이날 오전 대통령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회의에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처음으로 “법적 도덕적 책임을 지게 하는 게 국민 여론”이라는 취지로 사실상 홍 대사에게 사퇴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날 삼성은 임직원 명의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주말 여행에서 돌아온 홍 대사는 심신이 몹시 지친 상태에서 관저에 머무르다 25일 아침(한국 시간 25일 밤) 김우식(金雨植) 대통령비서실장을 통해 노 대통령에게 사의를 전달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워싱턴 쪽과는 어떤 의견 교환도 없었다”고 말했지만 청와대의 의중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반영된 결과였다.

홍 대사의 사의 표명 소식에 대사관 관계자들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라는 반응이다. 일부 직원들은 “이제 막 일을 시작하려던 때였다”며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태생적 한계’가 많았고, 본인은 물론 노 대통령이나 청와대도 ‘홍석현의 한계와 이력’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