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복제인간’의 천국? 복제인간을 다룬 마이클 베이 감독의 SF 액션영화 ‘아일랜드’의 흥행 희비가 한국과 미국에서 엇갈렸다. 21일 국내 개봉한 이 영화는 나흘 동안 관객 97만 명을 모으며 흥행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반면 22일 ‘본토’ 미국에서 첫선을 보인 이 영화의 개봉 성적은 박스오피스 4위. 국내의 경우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복제 성공 덕분에 ‘복제인간’이란 소재가 호재로 작용한 반면, 미국에선 관객들이 다소 무거운 주제로 받아들인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장기 이식을 위해 만들어진 복제인간이 수용소를 탈출해 자신의 원 주인(‘스폰서’)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아일랜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복제인간의 특성과 행위는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과학문화연구소 이인식 소장의 도움을 받아 이 영화 속 복제인간의 행태가 이론적으로 가능한지를 점검했다.
① 복제인간은 튜브 속에서 복제돼 ‘어른’ 상태로 태어나는데…
불가능하다. 다 큰 성인을 사진 찍듯 옮겨놓는 복제기술(이건 엄밀히 말해 ‘복제’가 아닌 ‘복사’다)은 현재로선 없다. 현재 이론적으로 가능한 인간복제 기술은 체세포 핵이식. 핵이 제거된 인간의 난자에 인간의 체세포 핵을 옮겨 심고, 이렇게 만들어진 배아를 자궁에 넣어 태아부터 시작해 정상적인 임신기간을 거쳐 태어나는 것. 이 경우 복제인간은 ‘갓난아기’ 상태로 세상에 나올 수밖에 없다.
② 복제인간은 홍채 및 지문인식 보안시스템을 무사통과하는데…
불가능하다. 체세포핵이식을 통해 복제인간이 태어나더라도 홍채나 지문은 원주인과 똑같지 않다. 이는 유전자가 동일하고 같은 자궁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의 홍채나 지문이 서로 다른 것과 같은 이치. 똑같은 유전자로 출발하더라도 몸의 일부를 만들어 가는 분화과정에서 아주 작은 환경의 차이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타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모체(이 영화에서는 복제인간 배양 튜브)를 살짝 건드리는 극미한 스트레스만 주어도 홍채나 지문에 영향을 줄 수 있다.
③ 복제인간은 자신에게 주입되지 않았던 ‘스폰서’의 기억을 문득 떠올리는데…
불가능하다. 태어나면서 백지(白紙)나 다름없는 뇌는 ‘노 인풋, 노 아웃풋(투입된 게 없으면 나오는 것도 없다)’. 유전자가 같은 복제인간이라도 경험하지 않았거나 주입되지 않은 기억은 떠올리지 못한다.
④ ‘스폰서’를 만난 복제인간은 ‘나보다 키가 너무 작다’면서 실망하는데…
가능하다. 복제인간과 원 주인의 키가 같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키 크는 유전자’가 똑같더라도 자궁(혹은 배양튜브) 내 환경이나 성장기간의 영양상태 등에 따라 원 주인과 복제인간의 키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 특히 이 영화에서 남자 복제인간인 ‘링컨6-에코’의 원 주인인 ‘톰 링컨’은 난교를 일삼는 바람에 간 기능이 크게 약화된 설정으로 나오는데, 원 주인이 성장과정에서 과도한 섹스행각으로 진을 뺐을 경우 키 크는 데 저해요소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⑤ 복제인간은 성욕이 제거된 채 태어나는데…
이론적으론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론 불가능에 가깝다. 이론적으로 성욕 제거는 유전자 조작이 아니라, 뇌의 시상하부를 없앰으로써 가능하다. 성호르몬 분비를 관장하는 시상하부를 제거함으로써 섹스 욕망이 일지 않도록 하는 것. 그러나 시상하부는 호르몬 분비뿐 아니라 체온조절, 식욕조절, 분노표출 등의 생체유지 기능을 함께 갖는다는 사실이 문제. 결국 성욕 제거를 위해 시상하부를 들어낸 복제인간 ‘링컨6-에코’가 영화에서처럼 자신의 탈출을 제지하는 수용소 직원들에게 화를 내거나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행위다. 하긴, ‘링컨6-에코’는 식욕조절 이상으로 먹고 또 먹다가 애당초 배가 터져 죽었을 터이지만.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