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비밀 도청 조직인 미림팀장 공운영(58) 씨에게서 도청 테이프를 회수한 전 국가정보원 감찰실장 이건모(60·사진) 씨는 28일 “회수한 도청 자료를 모두 불에 태워 없앴으며 당시 정권 실세에 테이프를 제공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1999년 3월부터 2001년 4월까지 국정원 감찰실장으로 재직한 이 씨는 이날 연합뉴스에 보낸 해명 자료와 전화 인터뷰 등을 통해 “도청 내용은 일절 말할 수 없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 씨에 따르면 1999년 여름 공 씨에게서 도청 테이프 200여 개와 녹취록 등 박스 2개 분량을 반납 받아 천용택(千容宅) 당시 국정원장에게 개요만 보고하고 같은 해 12월 20∼23일경 국정원 소각장에서 모두 태웠다는 것.
천 전 원장은 이씨의 보고를 받고 “알았다. 검토해 보라”고만 말한 뒤 더 이상 묻지 않았다고 그는 전했다.
‘테이프 폐기’ 해명자료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감찰실장을 지낸 이건모 씨가 28일 연합뉴스에 보낸 해명자료. 특수도청 담당 미림팀이 김영삼 정부 당시 도청자료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연합
이 씨는 “도청 자료가 공개된다면 상상을 초월한 대혼란을 야기하고 모든 분야에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옷 벗을 각오로 소각 처리했다”고 말했다.
당시 정권 실세에 도청 내용이 제공됐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정부 고위 관계자에게 일절 보고하지 않았다”며 “천 전 원장의 후임인 임동원(林東源) 전 국정원장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도청 테이프가 더 있을 거라는 의혹에 대해서는 “전량을 회수했다고 자신할 수 없다”면서도 “설령 외부에 (테이프가) 더 존재한다고 해도 이번 일로 세상에 나타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 씨는 “내가 입을 열면 안 다칠 언론사가 없다”며 도청 자료의 추가 존재 가능성을 내비친 바 있다.
이 씨는 국정원 광주지부장으로 재직하던 2002년 12월 국정원 내부 감찰정보를 외부로 유출한 혐의로 2003년 4월 구속기소됐으나 지난해 6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으며, 이번 사건과 관련해 최근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