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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六.동트기 전

입력 | 2005-07-30 03:11:00

그림 박순철


“틀림없습니다. 겁을 먹은 유방이 또 관중으로 달아나려고 하는 것이니, 이번에는 반드시 그를 잡아 죽여야 합니다. 제게 한 갈래 군사를 주시면 관중으로 드는 길목에 매복해 있다가 그 목을 잘라 대왕께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패왕은 무겁게 고개를 바로 저었다.

“같은 적과 싸우면서 전에 썼던 계책을 다시 쓰는 것은 병가(兵家)에서 엄히 금하는 일이다. 유방이 비록 하찮은 장돌뱅이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나, 군사를 이끌고 싸움터를 떠돌기가 벌써 5년에 가까우니, 그만 일은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장량과 진평까지 붙어 있는데 또 그런 어수룩한 일을 꾸미겠느냐? 무언가 다른 속셈이 있을 것이다.”

패왕이 그렇게 말하자 역시 함께 있던 계포가 조심스레 받았다.

“그렇다면 동쪽을 시끄럽게 하다가 서쪽을 들이치는 격(성동격서·聲東擊西)으로 유방이 대왕을 속이려 드는 것이나 아닐는지요. 마치 대군을 이끌고 서문을 나와 관중으로 달아날 것처럼 하다가 저만 슬며시 남문으로 빠져나가려는 수작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전처럼 경포와 짜고 완읍(宛邑)과 섭읍(葉邑)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대왕께 맞서면 그보다 더 성가신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야, 남쪽뿐이겠는가? 한단(邯鄲)에서 오고 있다는 한신(韓信)의 대군을 바라 동쪽으로 달아날 수도 있겠지. 어쨌든 늙은 흉물(凶物)이 꾸미는 일이니 또 속지 않도록 모두 살피고 또 살피도록 하라.”

패왕이 그러면서 성고성 안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사이에 날이 저물었다. 어둠이 깔리면서 서문 쪽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은 한층 더 뚜렷해졌다. 유독 그쪽에 횃불이 밝아 밤하늘을 훤하게 비추었고, 말울음 소리와 개갑(鎧甲) 부딪는 소리에 사람의 웅성거림까지 그쪽만 시끄러웠다.

그 모든 것을 보고 마침내 어떻게 할까를 결정한 패왕이 장수들을 불러 말했다.

“환초와 계포는 중군과 더불어 서문에 남아 지켜보다가 유방이 정말로 관중으로 돌아가려 하면 길을 끊고 사로잡아라. 유방이 다시 관중으로 돌아가게 해서는 아니 된다. 종리매는 군사 1만을 이끌고 동문으로 가서 조나라로 가는 길목을 지켜라. 만에 하나라도 유방이 한신의 대군을 차지하게 해서는 아니 된다. 용저는 군사 1만으로 남문을 맡아 유방이 남쪽으로 달아나는 것을 막아라. 유방이 다시 경포와 손발을 맞춰 과인에게 맞서게 해서는 아니 된다.”

그때 성고성의 북문(北門)은 문루(門樓)를 쌓은 돌이 아름답다 하여 옥문(玉門)이라 불리었다. 계포가 불쑥 물었다.

“옥문 쪽은 비워 두실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다. 북쪽으로 가봤자 아무도 없으니 유방이 그리로 달아날 리는 없지만, 그래도 한 갈래 군사를 보내 길을 끊으려 한다.”

패왕은 그렇게 대답했으나 북문으로 보낸 것은 겨우 군사 3천에 이름 없는 아장(亞將) 하나였다. 패왕 자신은 기마대와 함께 유군(遊軍)처럼 되어 살피다가 어디든 위급한 곳이 생기면 달려가기로 했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