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비밀도청 조직 전 팀장인 공운영 씨 집에서 불법도청 녹음테이프 274개와 200∼300쪽짜리 녹취록 13권을 압수했다. 이는 대부분의 도청 테이프와 녹취록을 1999년에 회수해 소각했다는 당시 국정원 관계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도청 범죄의 결과물들이 여러 곳에 남아 있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우선 국정원은 전신(前身)인 안기부가 저지른 ‘불법도청이라는 국가범죄’의 전모를 낱낱이 밝히고 남은 흔적도 철저히 찾아내야 한다. 만약 내부자(內部者) 정서와 집단보호 심리가 작용해 진실에 대한 전면적인 접근을 회피하거나 미봉적인 조사에 그친다면 현 조직의 도덕성과 신뢰성에도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검찰은 안기부 내부뿐 아니라 불법도청과 관련된 김영삼 정권 인사들까지 포함한 도청 네트워크의 전체상을 파헤쳐야 한다. 후대(後代) 정권 하의 인사들이 불법도청 내용을 알고도 묵인했거나 정치적으로 악용했는지도 수사해야 한다. 천용택 전 국정원장이 어떤 약점이 잡혀 수거와 조사에 소홀했는지, 정권 차원의 의도는 없었는지도 함께 밝혀져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나라에서 불법도청의 잔재를 뿌리 뽑는 일이다. 관계기관들의 조사와 수사가 이를 위한 확실한 계기가 돼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불법도청의 내용물을 법의 원칙에 어긋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경계돼야 한다. 법치를 위해 근절해야 할 불법도청의 결과물이 ‘국민의 알권리와 공공의 이익’ 범위를 뛰어넘어 법치를 흔드는 재료가 돼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