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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일과 꿈/강성주]인생 2막은 시네마 천국

입력 | 2005-08-01 03:10:00


내 나이 40세. 적잖은 나이지만 나는 아직도 어렸을 적 ‘주말의 명화’가 주었던 가슴 설렘을 잊지 못한다. 영사기가 부지런히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가끔씩 옛 추억에 빠져 들곤 한다.

사실 나는 한동안 영화와는 상관없는, 다른 길을 걸어 왔다. 10년 가까이 자금관리 투자조언 투자수익분석 등의 업무를 하며 증권가에 몸담았지만 왠지 내 일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항상 가슴 한구석에 답답한 응어리가 뭉쳐 있는 것만 같았다.

새 인생을 시작하게 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4년 전이다.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가 길을 잃어 잘못 들어간 곳이 영사실. 잠시 머무는 사이 내 눈에 비친 영사실 모습은 답답한 회사 생활의 숨통을 틔워 줄 것만 같아 보였다. 독립된 공간에서 근무하는 영사실 일에 대한 환상이 컸을 수도 있지만 이직을 결심하게 된 것은 막연한 동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화관에서 근무하는 한 친구는 향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전직을 적극 권유했고 나도 증권회사에 다니는 동안 이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막상 증권회사를 그만둔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반대가 심했다. 대우도 좋고 번듯한 직장을 그만둔다느니 하면서 모두들 수긍하지 못했다. 특히 아내는 애들이나 하는 일을 한다며 한동안 대화조차 하지 않았다. 아내를 설득하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거의 1년간 영사실로 출근할 때마다 아내의 볼멘소리와 투정을 들어야 했다.

영사실 스태프로 일을 시작할 당시 내 나이는 36세. 20대 동료들과 함께 근무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낮에는 상영기술 등 영사업무를 익히고 밤에는 자격증시험 준비를 했다. 뒤지지 않기 위해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1년 뒤 영사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올해 봄에는 신설 극장지점의 영사실 총책임자 자리에 올랐다. 보통 10여 년이 걸리는 과정을 절반 이상 단축한 셈이다.

영사실 근무는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마음은 더 편하다. 번잡하지 않은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영사실 근무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일지도 모른다. 수백 명의 관객이 숨죽이며 영화에 몰입하는 진지한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영사실 일을 4년 정도 하니 관객 반응을 살피는 것으로도 ‘될 영화’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가까운 친지에서부터 먼 친구들까지 내게 새로 개봉되는 영화가 재미있는지를 물어 온다.

나는 지금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남들보다 한걸음 늦게 시작했지만 열정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조그만 영사창을 통해 불 꺼진 객석을 바라보며 사람들에게 영화로 꿈과 희망을 전한다.

:약력:

1965년생인 강 실장은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뒤 증권회사에서 9년간 일한 ‘증권맨’ 출신이다. 처음엔 낯설었던 20대 동료들의 신세대식 사고와 농담에 지금은 익숙해져 오히려 같은 또래와 세대차를 느낀다고 한다.

강 성 주 CGV광명 영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