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기 우리은행장은 틈만 나면 경기장을 찾아가 임직원들과 함께 농구단을 응원한다. 사진 제공 우리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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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중국 항저우(杭州)에 출장 중이던 황영기(黃永基) 우리은행장의 휴대전화에 문자 메시지가 떴다. 임원들과 버스로 이동하고 있던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중대 발표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황행장이 말문을 열 때까지 침묵이 흘렀다. “우리은행이 신세계를 67 대 57로 꺾고 우승을 향해 힘차게 달리고 있답니다.” 긴장했던 임직원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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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상반기 업적평가대회가 열린 경기 용인시 기흥의 신한은행 연수원. 마이크를 잡은 신상훈(申相勳) 행장은 뜻밖에도 여자농구단을 본받자고 역설했다. “선수들은 기초체력 강화에 힘썼습니다. 은행영업의 성패도 ‘한건주의’가 아니라 꾸준한 기초체력 강화에 달려 있습니다.” 그는 특히 “주부스타 전주원 선수의 패스 하나, 리바운드 하나가 큰 효과를 내고 있다”며 “고참 직원의 행동과 말 한마디가 은행의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신상훈 신한은행장(왼쪽에서 두 번째)은 지난달 7일 여자 프로농구 여름리그 개막전을 관람했다. 사진 제공 신한은행
금융시장에서 치열하게 경합하는 시중은행들의 격전지가 농구장으로 옮겨간 듯하다. 다른 팀에는 져도 은행 라이벌에게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자존심 싸움이 대단하다.
우리은행 인적자원(HR) 운영팀 이경희(李慶喜) 부장은 “지난달 7일 여자 프로농구 개막전 때 신한은행에 졌다가 25일 통쾌하게 설욕하자 천당에 오른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관심 덕분인지 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에 참가한 6개 팀 중 우리, 국민, 신한은행은 1일 현재 1∼3위를 달리며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다.
우리은행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은행장 등 1만4000여 명 전 직원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경기결과를 알린다.
그동안 3번이나 우승한 명문 팀답게 승전보가 훨씬 많지만 황 행장은 “4번 우승한 팀(국민은행)도 있지 않으냐”며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곤 한다.
신한은행 직원들은 농구팀이 겨울리그에서 시원찮은 모습을 보이자 “여름리그에선 반드시 우승하라”며 1억 원을 모았다. 은행도 1억 원을 보탰다. 농구단(에스버드)의 성적에 따라 금리가 결정되는 ‘에스버드 정기예금’도 만들어 팔고 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수시로 농구경기 결과를 챙길 정도로 농구단에 관심을 보인다. 사진 제공 국민은행
전통의 명가(名家) 국민은행도 질 수 없다. 강정원(姜正元) 행장은 아무리 바빠도 농구단 성적을 챙긴다. 이길 때마다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격려한다. 최근 개통된 은행 내 위성방송은 국민은행 여자농구팀의 주요 경기장면을 편집해 전국 지점에 송출하고 있다.
국민은행 농구단 양진욱(梁鎭旭) 사무국장은 “일과가 끝난 뒤 경기가 열리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직원들이 경기장에 자연스럽게 모인다”며 “임직원 단합을 이끌어내는 데 농구만 한 것도 없다는 사실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3개 은행 모두 은행간 통합을 거친 조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구성원들의 ‘화학적 통합’을 위해 농구에 더 관심을 쏟는 게 아닌가 싶다”고 해석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