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에 나사 풀린 맨홀뚜껑지난달 29일 경기 가평군 청평댐 인근 조종천의 하수관 맨홀 뚜껑이 쉽게 열렸다. 며칠 전 비가 많이 내리자 뚜껑을 고정하는 볼트가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헐거워졌기 때문이다. 가평=이종승 기자
《6월 27일 경기 양평군 강하하수처리장. 최대 처리용량 3600t인 이곳에 8072t의 하수가 한꺼번에 유입되면서 하수처리장이 일시적으로 기능을 상실했다. 최근 비가 온 7월 27일과 28일에도 7900t과 6200t이 유입됐다. 하수관에 물이 넘쳐 맨홀 바깥으로 물이 새는 장면도 목격됐다. 처리용량 6200t인 경기 가평군 청평하수처리장에도 비가 내린 7월 초 8000t이 유입됐다.땅속에 묻는 하수관의 특성상 알기 어려운 공사의 문제점이 장마철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처음 드러난 것.》
양평과 가평 하수관 공사는 사실상 작년 말에 끝났으나 올여름 비만 오면 빗물과 지하수가 하수관으로 유입돼 하수처리장의 용량을 넘어서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하수처리장에 용량을 넘는 물이 유입되면 하수관이 파손되거나 정화되지 않은 더러운 물이 하천에 방류된다. 따라서 빗물이나 지하수가 절대 유입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엄청난 예산에 공사기준은 없다?
취재진은 양평과 가평 하수관 공사의 문제점을 확인한 뒤 시공사인 삼성엔지니어링에 확인했다.
이완용 현장소장은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에는 문제가 없지만 우기에는 빗물이나 지하수가 하수관에 상당량이 유입된다”고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소장은 “공사가 제대로 됐는지 판정하는 성과보증 기준을 ‘장마철인 6월부터 9월까지 120일간의 하수관 유량의 평균치’로 하기로 환경부 및 환경관리공단과 계약했기 때문에 공사가 부실인지 아닌지는 아직 판단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른 공구는 성과보증 기준을 ‘1년간 하수관 유량 평균치’로 더 완화했다”고 밝혔다.
공사감독 및 감리책임을 맡고 있는 환경관리공단은 역시 “성과보증 조건을 아직 명확하게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사가 잘못됐는지 판정을 내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2002년부터 3조2200억 원을 투입해 전국에서 3년 남짓 진행한 대형 국책사업에 명확한 성과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내년부터 3조5000억 원씩, 2020년까지 총 26조 원을 하수관 공사에 투입할 계획이다.
1단계로 팔당호 수질 개선을 위해 6500억 원을 들여 경기 구리시와 남양주시 등 10개 시군에서 쌍용, GS, 코오롱, 대우건설 등 7개 건설사가 하수관거 정비사업을 하고 있다. 현재 공구마다 24∼78%가 진행된 상태. 낙동강, 섬진강, 영산강 수계 등 전국의 다른 하천에서도 같은 공사가 진행 중이다.
문제점이 드러난 양평과 가평 지역은 삼성엔지니어링이 2003년 1월 착공해 전국에서 유일하게 사실상 공사가 끝난 선(先)시행 공구다.
○ 전문가들 “이해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삼성엔지니어링과 환경관리공단의 설명을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환경부와 환경관리공단에 말하기 어려운 속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인천대 토목환경시스템공학부 최계운(崔桂澐) 교수는 “생활오수, 축산폐수, 공장폐수를 하수처리장으로 보내는 하수관에는 원천적으로 빗물이나 지하수가 스며들어서는 안 된다”며 “성과기준을 4개월이나 1년 평균치로 계산하면 부실공사를 가려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비가 안 올 때를 포함해 평균을 내면 부실시공을 했더라도 통과할 수 있다는 것.
환경부는 하수관 공사 성과기준에 대한 논란을 포함해 현장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생활하수과 임채환 과장은 “구체적인 성과기준은 환경관리공단이 책임지고 결정하도록 돼 있어 환경부가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인하대 환경토목공학부 서병하(徐炳夏) 교수는 “공학적으로는 하수처리장의 용량을 넘는 날이 하루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며 “설계 용량보다 물이 많이 흐르면 하수관이 파열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나중에 막대한 복구비가 들어간다”고 지적했다.
양평·가평=이병기 기자 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