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다 CG(컴퓨터 그래픽)한 줄 알겠네.”
웃통을 드러낸 이정재(32·사진)를 바라보던 곽경택(39) 감독이 “근육 좀 대충 키우라 캤는데(했는데) 너무 키웠어. 심해. 심해도 느무(너무) 심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정재의 몸은 복부에 새겨진 왕(王)자가 비현실적일 만큼 선명했다.
순제작비 150억 원을 들인 영화 ‘태풍’(12월 개봉 예정)의 마지막 촬영이 진행된 1일 오전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 정의감 넘치는 해군특수부대 장교 강세종(이정재)이 부대원들과 전투적인 럭비를 하며 우정을 다지는 초반 장면이다. 강세종은 해적으로 떠돌면서 한반도 전체에 끔찍한 복수를 하려는 남자 씬(장동건)과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칠 운명.
웃통을 훤히 드러내는 이 장면은 이정재가 “내가 흡족할 때까지 몸을 만든 뒤 찍게 해달라”고 곽 감독에게 요청해 촬영 스케줄의 가장 마지막에 남겨뒀다는 후문. 이정재는 촬영 기간 내내 술과 담배를 끊었다.
“하루 네 끼를 먹었어요. 첫 끼를 제외한 나머지 세 끼를 모두 삼계탕만 먹고 운동했어요. 근육을 만드는 데 닭고기가 좋으니까요. 첫 끼는 왜 (삼계탕을) 안 먹었느냐고요? 새벽엔 삼계탕 집이 문을 안 열더라고요.”(웃음)
곽 감독이 이정재에게 붙여준 별명은 ‘각돌이’. 이마 턱 광대뼈 눈두덩 등 얼굴의 ‘각’이란 ‘각’은 하나 같이 좋아서 생긴 별명이란다. “원체 다혈질이라 내 속부터 까놓고 보여줘야 되레 마음이 편해지는 성격”이라고 고백한 이정재는 “이번에 정의롭고 과묵한 ‘본연의’ 이미지로 돌아갔다”고 했다.
“사람들은 아직도 ‘모래시계’의 백재희 이미지를 그리워해요. 늘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이면 한번쯤 백재희로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이정재는 4시간 넘게 구슬땀을 흘리며 살과 살이 ‘퍽퍽’ 부딪치는 럭비 장면을 찍었다. “좋아”라는 곽 감독의 외침과 함께 러시아, 태국, 한국을 오간 9개월간의 촬영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오늘 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을 묻자 이정재는 “술 한 잔”이라고 답했다.
부산=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