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주재 한국대사관의 ‘1학기 성적표’는 어떨까.
기준이 모호하다며 동의하지 않는 이도 적지 않겠지만 일단 본국에 보내는 ‘전문(電文)’ 발신 통계가 평가지표가 될 것 같다.
본보가 단독 입수한 외교통상부의 상반기 외교전문 발신 통계를 보면 중국 주재 대사관이 3508건으로 단독 선두. 하루 평균 20건꼴이니 대단한 양이다. 이어 주미대사관, 주일대사관이고, 국제회의가 많은 주제네바대표부와 주유엔대표부가 뒤를 잇는다.
전문 보고의 주된 내용은 주재국과 본국 사이의 현안과 관계된 것이고, 한국 행정에 참고가 될 만한 리포트도 상당수다. 형식은 일반 용어로 보내는 평문(平文)과 암호화한 비문(秘文)이 있다.
중국대사관이 1위를 차지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일이 폭주한다는 뜻이다. 상반기 통계니까 11일째 계속되고 있는 6자회담 관련 전문은 빠져 있는데도 그렇다. 특히 주미대사관 보고 건수를 능가한 점은 중국 비중이 얼마나 커졌는지 실감하게 해 준다.
대사관에는 외교통상부 소속 외에도 각 부처에서 파견된 ‘주재관’이 근무 중인데 이들의 전문 발신 통계를 보면 부처별 편차가 커 흥미롭다.
주일대사관의 경우를 보자. 분야별 수위는 과거사 문제로 숨 돌릴 새가 없는 정무 분야로 932건. 이어 영사, 경제, 홍보, 총무 분야다.
나머지 각 행정부처에서 파견된 주재관 중 1등은 농림 분야로 95건이었다.
농식품 분야는 국가 전체 수출 비중은 적지만 ‘체감 비중’은 훨씬 크기 때문에 잔일이 그만큼 많은 탓이다. 다음은 건설, 통일, 정보, 과학, 해양, 교육, 관세, 문화 순으로 각각 74∼58건. 부처에 따라 근무자가 1∼3명으로 달라 개인당 건수를 따져 보면 차이가 크다.
‘1학기 성적표’에 대한 관계자들의 반응이 재미있다.
보고 건수가 적은 분야나 부처 근무자들은 대부분 “양보다 질 아니냐”며 웃어넘긴다. 나름대로 국익을 위해 정신없이 뛰었는데 보고 건수만 보고 평가하면 섭섭하다는 반응.
그 반면 보고 건수가 많은 사람은 농반진반(弄半眞半)으로 “일도 일이지만 접대를 잘 해야 하는데…”라며 역시 웃는다.
도쿄=조헌주 특파원 hans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