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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김제완/아인슈타인 뇌의 비밀

입력 | 2005-08-06 03:05:00


군국주의로 무장한 일본이 해외 침략에 국력을 모두 쏟아 붓던 일제강점기에 ‘일본 관동군 헌병사령부’는 권세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막강했던 잔혹한 권력기관이었다. 최근 그들에게 체포돼 생체 실험용으로 만주의 731부대(인간 생체실험으로 악명이 높았던 일본 관동군 휘하의 세균전부대)로 이송됐던 1463명의 명단이 포함된 극비 기밀문서가 언론에 공개됐다.

명단에 들어 있는 이들은 주로 지하공작원이나 팔로군 또는 항일 전사로서 일제에 저항한 이들이며 국적은 중국, 한국, 옛 소련, 몽골 등이었다. 명단의 표지에는 ‘특별 이송’과 ‘절밀(絶密·절대기밀)’이라고 적혀 있고 관동군 헌병사령관의 서명까지 있다고 한다. 731부대의 존재와 생체 실험 자체를 완강하게 부인해 온 일본 정부가 이처럼 백주의 햇빛 아래 드러난 극명한 증거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 궁금하다.

이번에 발굴된 명단에서 확인된 한국인은 6명. 그중 4명은 출신 지역, 나이, 이름뿐만 아니라 체포된 날짜와 장소가 명기돼 있다고 한다. 특히 이기수(李基洙·함북 신흥)의 경우는 사진과 함께 일본 헌병이 작성해 보낸 지령서 원본까지 첨부되어 있다. 언론에 보도된 그의 사진은 녹슨 비수처럼 보는 이의 심장을 후빈다. 감옥 건물로 보이는 배경 앞에서 입을 굳게 다문 채 사진이 찍힌 낡은 죄수복의 젊은 남자. 긴 세월을 건너오면서 많이 삭은 사진으로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얼굴이다. 장부 나이 28세. 그 빛나는 젊음으로 이역에서 잃어버린 조국을 찾겠노라고 활약하다가 잔혹하기로 유명했던 일본 관동군 헌병대에 체포됨으로써 그의 생애는 큰 칼로 내리친 듯 끝났다.

그가 관동군 헌병대에서 당한 고초는 어떠했고, 731부대에 보내져 강제로 생체 실험을 당하면서 느낀 고통은 어떠했을까. 끝내 숨을 거두면서 느낀 고통은 또 어땠을까.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그와 그 시대 사람들이 지르는 비명이 그 안에 함께 엉겨있는 듯하다.

한낱 미물인 동물들도 산 채로 각을 뜨이게 되면 무서운 고통과 원한이 서린 기를 내뿜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이 그것도 일본에 침략 당한 조국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을 바친 의식 있는 지사들이 일본인들에게 잡혀서 생체 실험을 당하고 죽어가면서 느낀 고통과 원한과 저주는 과연 어떠했을 것인가. 그처럼 참혹한 비극이 불과 60년 전만 해도 이 땅에서 일상적인 현실로 흔하게 벌어졌던 모습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새삼 가슴이 막힌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었던 일본과 독일이 종전 뒤 사과하는 태도가 정반대인 것은 이제 인류사적 연구과제에 속한다. 범죄 자체를 부인하고 왜곡하는 가해자 일본의 횡포로 야기되는 새로운 고통에 시달리는 아시아 피해국들의 기묘한 처지 또한 같이 다뤄질 과제에 속하리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피해국들이 거듭거듭 일본에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진정한 사과’를 받은 피해자만이 ‘진정한 용서’를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일본인들은 두 종류로 나눠진다. 과거를 참회하고 반성하는 일본인들과, 만행을 부인하면서 오히려 의기양양한 일본인들이다. 후자인 일본인들은 어찌하여 그처럼 비루하고 수치스러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 되었는가. 일본이 저지른 죄악으로 원통하게 죽어간 이들의 원한과 저주가 일본 땅에 사무쳐서 인간답지 못한 삶의 방식이 멋대로 횡행하는 정신적 황무지로 만든 것인가.

확실한 건 하나다. 모든 일본인들이 가해자로서의 자신들의 과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진심으로 뉘우칠 때, 일본은 물론 전체 아시아에 진정한 화해와 평화가 깃들 것이다.

김제완 과학문화진흥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