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그들을 원로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들의 왕성한 연구열을 보면 늘 젊음으로 가득하다. 한영우(67·한국사) 한림대 특임교수와 박성래(65·과학사)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두 사람은 문화재위원이다. 40년 넘게 조선시대사와 한국과학사 연구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룩한 이들이 잇달아 역저를 냈다.》
◇조선왕조 의궤/한영우 지음/995쪽·6만5000원·일지사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은 기록의 나라였다. 그중에서도 의궤(儀軌)는 기록문화의 백미로 꼽힌다. 의궤는 제사 혼인 사신접대 장례 등 각종 왕실 의례의 전 과정을 글 그림으로 기록한 보고서.
저자는 서울대 규장각 관장 시절인 1992년, 의궤의 매력에 빠져들어 13년 동안 조선시대 의궤 600여 종을 샅샅이 연구했으며 그 결과를 이 책에 담아냈다. 각 의궤의 편찬 과정, 의궤의 역사적 변천, 그 가치와 의미, 의궤에 관한 다양한 정보 등을 총망라한 것.
한영우 한림대 특임교수
저자는 “의궤의 내용을 보면 그 세세함과 엄밀함에 놀라 몸서리쳐질 정도”라고 말한다. 1795년 정조의 수원 행차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를 보자. 행차 참가자 1600명과 말 800마리가 빠짐없이 그려져 있고 쌀을 나눠 준 백성은 5452명, 지급된 쌀은 368섬, 잔치에 초대한 노인은 384명이라는 내용까지 기록돼 있다. 참가자 명단, 물건 구입비용과 인건비, 행사 때 먹은 음식 등 시시콜콜한 내용도 빠지지 않는다.
“의궤는 전 세계 역사를 통틀어 조선에서만 만든 것으로, 우리의 자랑거립니다. 이 책이 왕실생활을 연구 복원하는 사람들에게 가이드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한국과학사상사/박성래 지음/710쪽·2만8000원·유스북
박성래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이 책이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40여 년. 저자가 한국인의 전통 자연관(自然觀)을 연구하기로 결심한 것은 1960년대 미국 유학시절이었다.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각종 역사서 속에서 자연현상에 관한 기록을 찾아 분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이 책은 옛 사람들의 자연관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것이 당대의 정치 사회 현상과 어떠한 관계에 있었는지를 규명했다. 별의 움직임이나 해와 달에 대한 생각, 기타 천둥 번개나 벌레 피해 등에 관한 생각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알 수 있다.
고려 조선시대 때 ‘암탉이 수탉으로 변했다’는 내용의 기록이 눈길을 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왕비와 외척 등 궁중 여성들이 지나치게 득세해 정치를 미혹하게 하는 걸 경계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천재지변에 담겨 있는 정치적 의미다. 가뭄이나 혜성 출현 등 천재지변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정치적 견해차로 이어져 격변과 갈등을 초래했는가 하는 점이다. 쿠데타로 등극한 세조와 정상적으로 등극한 성종의 자연관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이 책을 자신의 대표작으로 삼고 싶다는 저자. 드라마 작가들이 생생한 사극을 만드는 데 이 책을 많이 참고해 주길 기대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