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8월이면 일본 사회는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長崎) 주민들이 원자폭탄 투하로 겪은 참상을 부각시키며 일본이 ‘세계 유일의 원자폭탄 피폭국’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일본에서 살았다는 이유로 피해를 본 해외 거주 피폭자에 대해서는 생색내기 지원에 그칠 뿐이다.
일본 피폭자원호법은 국내외 피폭자에게 월 3만4000엔(약 34만 원)의 원호수당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 거주 피폭자는 건강수첩 발급과 수당 수급 절차를 일본에서 직접 밟도록 돼 있다.
현재 일본 외 피폭자는 4500여 명. 이 중 한국인은 2300여 명이지만 1700명만이 건강수첩을 갖고 있다. 고령인 데다 각종 질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나머지 피폭자는 일본 당국으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말년을 보내고 있다.
일본 법원은 해외 피폭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건강관리 수당과 장례비 요구를 각하한 지방자치단체의 행위가 위법이라는 판결을 여러 차례 내렸지만 일본 당국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다.
최근 교도통신이 원폭투하 60주년을 맞아 해외 거주 피폭자 441명을 상대로 일본 정부의 지원 실태를 조사한 결과 47.4%가 ‘불충분하다’고 답했다. 조사대상자의 평균 연령은 71.7세이며 80% 이상이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