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강연에 나선 강금실 전 법무장관은 “문학은 딱히 무슨 목적을 갖고 읽는 건 아니지만, 살면서 위기를 맞을 때마다 삶의 품격을 드러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최근에 읽었습니다. 너무 늦게 읽은 셈인데요, 깊이 있으면서도 섬세한 글을 읽고 싶다는 최근 제 바람을 꼭 채워줬습니다. 한 여성이 생각에 골몰하는 상황을 수면에 낚싯밥 드리운 장면에 비유한 대목은 오래 기억에 남더군요.”
강금실(康錦實·48·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전 법무부 장관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마로니에 미술관 강당에서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을 만나 들려준 독서 이야기다. 강 전 장관은 이날 문예진흥원이 1999년부터 마련해 온 ‘금요일의 문학 이야기’에 연사로 초청됐다. 지난해 7월 법무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 대중강연을 갖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이날 강연에는 80명이 넘는 참가자가 몰려 객석을 가득 채웠다.
강연에서는 자연스럽게 ‘강금실이 권하는 책들’의 목록과 그 나름의 독서법이 소개됐다.
“영국의 여성 작가인 브론테 자매에 대해 울프는 ‘제인 에어’의 샬럿 브론테에 대해서는 여성들이 갖는 울분 그대로를 그렸지만, ‘폭풍의 언덕’의 에밀리 브론테는 그런 감정을 넘어 사실을 보는 거리를 확보했다고 평가하더군요. 그런 거리가 필요하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는 법조인으로서 각별한 관심을 가져온 작품으로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羅生門)’을 들었다.
“‘라쇼몽’은 원작소설이 있는 영화인데 한 사람이 숨진 일을 놓고 세 목격자의 말이 모두 달라요. 판사 검사 변호사가 같은 일을 보는 시선이 모두 다를 수 있는 게 법조계인데, 제가 장관으로 있을 때 이걸 비디오테이프로 떠서 여러 분에게 나눠드렸죠.”
그는 “변호사로서 내가 꼭 이길 줄로만 알았던 사건에 대해 판사가 달리 판결하면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판결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열린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힘들었던 변호사 개업 초기에는 조지프 캠벨의 ‘신화의 힘’을 읽으며 고난 속에서도 자비를 나누는 삶의 보편성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은 시인 김정환 씨가 사회를 본 가운데 객석의 질문에 강 전 장관이 답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근황을 묻자 그는 “여유가 있어서 좋다. 최근에는 텔레비전에 중독돼 전생이나, 미확인비행물체(UFO), 연쇄살인 사건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밤늦도록 본다”고 말했다.
‘다시 태어나면 뭘 하고 싶냐’는 질문에 강 전 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전생의 업을 씻기 위해 다시 태어난다는데, 제가 업을 얼마나 씻어 낼지는 모르겠지만 웬만하면 다시 안 태어나고 싶거든요. 그리고 꼭 또 뭘 더 해야겠다는 것도 없어요.”
권기태 기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