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이학수(李鶴洙·삼성구조조정본부장)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소환은 일종의 사전 탐색전이다.”
검찰이 이 부회장에 대해 9일 검찰 출석을 통보하면서 참여연대가 고발한 삼성 관련 도청 테이프 내용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전날에는 소환 조사 여부가 불투명했던 이 부회장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까지 전격적으로 취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출석하면 도청 테이프 문건을 내세워 삼성에서 돈을 받아내려 한 재미교포 박인회(58·구속) 씨를 만난 경위만 물어보고 돌려보낼 수 있겠느냐”며 “당연히 고발된 도청 테이프 내용에 대해 물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지금은 피고발인이지만 이 부회장의 신분은 복합적”이라며 피의자로 바뀔 가능성을 내비쳤다.
검찰의 행보를 표면적으로만 보면 1997년 이 부회장과 홍석현(洪錫炫) 당시 중앙일보 사장 간에 오간 대화를 통해 나타난 삼성의 불법자금 제공 의혹에 대해 사실상 수사를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의 이런 태도를 도청 내용 수사에 대한 본격 수사와 곧바로 연결짓는 것은 무리라는 게 검찰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우선 이 부회장 조사 방침을 밝힌 현재까지도 도청 테이프 내용 수사를 둘러싼 법리적인 장애물이 제거되지 않았다.
수사팀을 비롯해 검찰 수뇌부가 불법 증거인 도청 내용을 단서로 수사하는 문제를 놓고 연구 검토를 거듭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일단 통상적인 고발 사건의 수사 절차를 밟아갈 것으로 보인다. 고발인인 참여연대 관계자를 조사한 뒤 이 부회장에 대한 조사 방침을 밝힌 것도 이런 맥락.
따라서 현재까지 수사 전개 상황을 종합할 때 이 부회장 소환은 도청 내용의 본격 수사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기보다 ‘수사의 서막’에 가깝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 이 부회장과 정치권 인사 등 도청 내용에 나오는 당사자가 대화 내용을 시인하는 ‘양심선언’을 한다면 새로운 수사 단서가 제공되는 셈이어서 도청 내용 수사가 본격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검찰의 이 부회장 소환 소식에 삼성그룹은 당혹해 하는 분위기다.
삼성 관계자는 “아마 박 씨가 이 부회장을 찾아온 경위와 만나서 한 이야기 등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가 아니겠느냐”고 전망했다.
그러나 혹시라도 도청에 대한 수사가 자칫 ‘X파일’ 내용 수사로 확대될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검찰이 언론 보도를 근거로 수사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의견이 있기 때문이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