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어느 날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의 보좌관 A 씨는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외부로 전화를 걸기 위해 수화기를 들었다가 화들짝 놀랐다. 수화기를 통해 자신이 전날 외부 인사와 통화한 내용이 그대로 녹음돼 들려왔기 때문이다.
A 씨는 “정보기관이 녹음해 둔 대화 내용이 기술적인 착오에 의해 이 수화기에 다시 연결돼 흘러나온 것”이라며 “그 사건 이후 중요한 전화는 사무실 밖으로 나가 다른 전화를 이용했다”고 말했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도청 피해를 보았다는 증언담이다. 과연 DJ 정부 시절 국정원의 불법감청(도청)은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이뤄졌을까.
▽도청 대상자는 누구, 어떻게 활용됐나=국민의 정부 초반에는 도청이 제한적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1998년 5월 옛 국가안전기획부를 방문한 DJ가 “도청 미행 감시 고문을 반드시 없애라”고 당부한 상황에서 이를 무시하고 조직적으로 도청 행위를 자행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다.
국정원이 도청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천용택(千容宅) 원장 시절(1999년 5∼12월)이라는 게 국정원 및 구 여권 관계자들의 견해다.
당시는 2000년 총선을 앞둔 시점이기도 하다. 국정원이 이동식 휴대전화 감청장비를 자체 개발해 활용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1999년 12월)이다.
도청은 유력 정치인과 중견 언론인, 고위 관료 등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도청 공포는 국무총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자민련 몫으로 국무총리를 지낸 한 인사는 총리 재임 당시 도청을 우려해 사무실 안에서 일반 전화 사용을 꺼렸다.
전직 국정원장마저 도청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단적인 예가 1999년 10월 당시 중앙일보 기자였던 문모 씨의 ‘언론 문건(정권의 언론장악 시나리오)’ 파문. 이 문건은 문 씨가 작성해 이종찬(李鍾贊) 전 원장 사무실에 팩스로 보낸 것인데, 천 원장 측이 도청을 통해 이 사실을 파악했다는 것이 당시 여권 핵심인사의 증언이다.
천 전 원장이 1999년 12월 삼성 측으로부터의 DJ 정치자금 수수 발언으로 낙마한 뒤 들어선 임동원(林東源) 원장 체제에서는 국정원 국내파트(엄익준 2차장-김은성 2차장)에서 도청을 통한 정보 수집을 지속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국정원 관계자는 전했다.
▽DJ는 몰랐나=국정원은 이날 김 전 대통령의 도청 사실 인지 및 정보보고 여부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불법 감청을 없애라고 했기 때문에 위에까지 보고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DJ 측도 “어떤 불법 활동도 보고받은 바 없다”고 했다.
그러나 DJ가 도청 행위를 직접 보고받지는 않아도 묵시적으로 이를 인지하고 있었거나 가공된 형태의 정보는 접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도청 자료의 보고 및 활용 선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2000년 총선을 막후 지휘한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이나 박지원(朴智元)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에게 전달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