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한 우정 민영화 법안이 집권 자민당 소속 의원들의 조직적 반란으로 참의원 표결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고이즈미 총리는 법안이 부결되면 자신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해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할 것이라고 거듭 공언하고 있어 일본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반대파, ‘법안 부결로 고이즈미 불신임’ 기세=자민당 집행부는 5일 중립파로 분류된 나카소네 히로후미(中曾根弘文) 의원이 “법안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밝히자 아연 실색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의 아들로 4선 의원인 그는 신망이 두터워 동료 의원 4, 5명이 평소 ‘행동 통일’을 다짐해 왔다.
자민당 참의원 의원 114명 중 18명이 반대하면 법안이 부결되는 상황에서 나카소네 의원의 거취 표명은 무게 추를 반대파 쪽으로 기울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게 중론. 정계 소식통은 “집행부의 주말 설득이 변수이긴 하지만 반대파가 표 단속을 강화하고 있어 법안이 가결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전했다. 소속 의원에 대한 설득 작업을 지휘해 온 아오키 미키오(靑木幹雄) 자민당 참의원 회장도 “현 상태에서는 부결”이라고 말했다.
우정 민영화는 일본 최대의 금융기관인 우체국을 창구 네트워크, 우편, 저금, 보험 등 4개 분야로 쪼개 2017년까지 민간에 매각하는 정책. 자민당 내 반대는 우편업무 종사자 등 이익집단의 반발이 거센 탓도 있지만 주변의 충고를 묵살하고 자신의 뜻만 고집하는 고이즈미 총리 특유의 정치 스타일에 대한 반감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의원 해산-총선거, 정권교체 주목=참의원 우정특별위원회는 이날 우정 민영화 법안을 8일 열리는 본회의에 회부했다. 자민당 일각에서 부결도 피하고 중의원도 해산되지 않는 절충안으로 법안을 처리하지 않은 채 회기를 마치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지만 위원회 결정으로 본회의 표결이 불가피해졌다.
제1 야당인 민주당이 부결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선거 준비에 들어간 데 이어 연립여당인 공명당도 선거체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다케베 쓰토무(武部勤) 자민당 간사장은 간부회의에서 “마지막까지 법안이 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선거 포스터 촬영이나 선거 구호 작성도 서둘러야 한다”고 말해 부결을 각오하는 자세를 보였다.
자민당 집행부는 선거가 실시되면 중의원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거나 기권한 의원 51명 전원을 공천에서 배제한다는 방침. 이에 맞서 반대파는 신당을 만들어 선거에 나설 태세여서 상당수 지역에서 자민당이 둘로 쪼개진 채 선거를 치르게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정권 교체의 호기라며 단독 과반수 확보를 자신하고 있다. 자민당 내에서도 집권당 분열에 대한 유권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점을 들어 현역의원 중 절반 이상이 떨어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강하다.
총선거가 실시되면 고이즈미 내각은 선거관리 내각으로 성격이 바뀌며 선거 결과에 따라 진퇴가 결정된다. 일본 언론들은 고이즈미 총리가 정권을 내건 도박을 통해 자민당을 자신의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개조하면서 내년 9월까지인 집권기간을 연장하는 효과도 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