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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민 칼럼]세금 축내고 정책 왜곡하고

입력 | 2005-08-09 03:06:00


‘작은 정부가 사라지고 거대 통치조직이 형성됐다. 정부는 각종 명목으로 세금을 확대해 나갔다. 금리는 연리 12%에서 4%대로 내려갔는데 그건 투자 의욕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세제 개혁을 시도하자 경제는 지하로 숨기 시작했다.’

요즘의 일간지 경제면 기사가 아니다. 고대 로마제국이 기울기 시작할 때의 상황을 서술한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중의 한 대목(요약)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 조직이 커져 관리 수가 늘어나면 국민은 세금을 더 내어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집권자는 국민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작은 정부를 공약하고 최소한 그것을 실천하는 시늉이라도 한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달랐다. “작은 정부를 약속하지 않겠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충분히 하는 정부, 할 일을 가장 효율적으로 하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노골적으로 큰 정부를 공언했고, 실제로 정부는 점점 커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안에 17개의 위원회를 들어앉혔고 복수 차관제 등 행정부처 기구 확대로 전 정권 때보다 장차관급을 무려 22자리나 추가해 놓았다. 지방의 말단 공무원까지 합하면 전체적으로 4%가 넘는 공직자를 ‘참여정부’에 새로 ‘참여’시킴으로써 1조 원이 넘는 인건비가 국민에게 추가로 청구될 태세다.

국민은 과연 현 정부로부터 과거 정부 때보다 충분하고 효율적인 서비스를 받으며 살고 있는가. 공기업들이 그 흉내를 내 ‘효율적 서비스’를 위해서라며 조직을 방만하게 운용할 때 정부는 무슨 자격으로 그들을 비판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피 말리는 구조조정 노력을 하고 주주들로부터 경영평가를 받는다. 대통령은 국가의 CEO다. 국민은 이런 경영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요즘 정부과천청사 경제부처에서는 “까만 볼펜 들고 기안하는 사람은 한 명인데 빨간 볼펜 들고 고치려는 ×들은 수십 명이다”라는 원성이 자자하다. 과천의 경제전문 관리가 정책을 기안해 올리면 (잘 알지도 못하는) 청와대 내 수많은 위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내용을 고치려 달려든다는 것이다. “빨간 볼펜들은 세금을 축내 가면서 정책을 왜곡한다”고 직업관료들은 푸념한다. 이제 국민은 권위주의 정권의 독재정치로부터 도피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그 대신 늘어난 인건비만큼 가중된 세금 청구서의 무게로부터는 도피하고 싶어 할 것이다.

경기가 나빠 수입은 시원찮은데 내야 할 세금이 많아지면 당연히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줄어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상식이지만 민간소비가 줄어 경기가 악화되면 국가의 세수입도 따라서 감소하는 악순환이 생긴다. 우리 경제는 악순환의 한 과정인 심각한 세수 결함을 이미 상반기에 경험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비대해진 조직을 줄여 지출을 아낄 계획은 없다.

게다가 여기저기 개발한다고 인심 좋게 청사진을 뿌린 결과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는 토지보상금 수십조 원도 결국은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하고 북한에 줄 전기료 수조 원도 국민이 부담해야 하며, 이 정부의 역점 사업이라는 복지정책도 확대해야 하니 그게 세금으로 감당할 규모가 아니다. 빚을 얻어 쓸 수밖에 없는데 작년 말 현재 국가부채가 200조 원을 넘었으니 우리 자손들은 한 사람당 수백만 원씩, 구경도 못 하고 동의한 적도 없는 빚을 유산으로 받고 태어나게 됐다. 후대 어린이들은 이 정부 들어 확산된 사회 갈등의 후유증과 함께 엄청난 빚까지 떠맡아, 정신적으로 재정적으로 척박해진 환경에서 살아야 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정권에서 시작된 재정적자는 현정권 아래서 그 규모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 2년 반 뒤 들어설 차기 정부는 아마도 빚 설거지에 이만저만한 고생이 아닐 것이다. 세금은 내 본 사람들이나 그 부담의 무게를 절감한다. 특별한 소득 없어 세금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아온 운동권 인사들이 나라를 관리하는 자리에 참여할 때부터 이 정권에 작은 정부, 적은 지출의 도덕성을 기대했던 것은 무리였는지 모른다. “역사 속에서 놀라운 것은 정부가 불필요하게 지우는 무거운 짐에 국민이 승복하는 그 인내심이다”라는 어느 미국 정치인의 말은 지금 이 시대 우리 국민을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규민 경제 大記者 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