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새 CD 전집이 나왔다. EMI사가 내놓은 이 전집은 무엇보다 ‘황금 캐스팅’으로 눈이 휘둥그레지게 한다. 트리스탄 역에 플라시도 도밍고라는 황혼기의 거인이 등장하는 외에 테너 롤란도 비야손과 이언 보스트리지, 베이스 르네 파페 등 당대의 명가수를 ‘송두리째 긁어모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 화려한 소리의 축제 앞에서 기자는 조종(弔鐘) 소리를 듣는다. 무엇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종인가. 그것은 오페라 스튜디오 녹음의 죽음이다. 관계자들은 “이 음반을 끝으로 더 이상 수십억 원을 들여 녹음 스튜디오에 스타들을 모아 놓고 오페라 전곡을 녹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엇 때문인가. 이미 수많은 오페라 전집 CD가 음반시장에서 한계 속의 경쟁을 펼치고 있는 것도 이유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오페라 실황 DVD의 성장에 있다. 녹음 스튜디오에서 만든 오페라 CD가 수많은 준비와 며칠 동안의 녹음과정, 지난한 편집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데 비해 DVD 제작자들은 오페라극장에 가서 공연 실황 전 과정을 녹화하면 벌써 대부분의 작업이 끝난다.
가격 면에서도 스튜디오 CD와 실황 DVD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 오페라 전집을 CD로 제작하면 두세 장이 된다. 그러나 DVD는 CD에 없는 무대 영상과 자막까지 제공하는 데도 세 시간이 넘는 오페라를 한 장에 거뜬히 소화한다.
그렇다면 싼값에 영상까지 제공하는 새로운 매체가 나왔는데 왜 기자는 불평인가. 한마디로 무대 실황 녹음의 음향이 스튜디오 녹음의 품위를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편집의 손길을 거친 스튜디오 녹음은 ‘짜깁기’라는 일부의 악평 속에서도 치밀하게 계산된 세공(細工)의 묘미로 수많은 사람의 귀를 사로잡아 왔다. 1974년 발매된 데카 사의 푸치니 ‘투란도트’에서 파바로티의 “승리다(Vincero)!”라는 외침은 새벽 하늘로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환상을 거실의 청중에게 제공했다. 공연 실황 녹음이라면 극장의 높이와 폭이 귀로 가늠되고, 환상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스튜디오 오페라 녹음은 실황 DVD라는 새 매체로 ‘대체’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자체의 생명과 매력, 고정팬을 가졌던 독립된 매체와 문화의 종식을 의미한다. 혹 오페라 영상물 산업이 더 성장해서 안젤라 게오르규가 출연한 푸치니의 ‘토스카’처럼 오페라 전곡을 극영화로 만들고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사운드 트랙을 입히는 일이 활성화된다면, 오페라 스튜디오 녹음은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단지 기대일 뿐일까.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