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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대한민국/21세기 新고전 50권]노예의 길

입력 | 2005-08-10 03:07:00


20세기 전반은 전체주의가 득세한 시대였다.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했고 이어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민족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 정당들이 집권했다. 당시 대부분의 지식인은 전체주의의 성격에 대해 알지 못했고 그럴듯한 외양에 매료됐다.

공산주의는 ‘인류의 미래’로 일컬어졌고, 민족사회주의는 퇴폐한 자유주의 문명의 대안으로 여겨졌다. 소수의 자유주의 지식인들만이 전체주의가 문명사회에 제기하는 심각한 위협을 지적했다.

특히 전체주의의 본질을 규명해 자유주의를 지키는 데 두드러진 공헌을 한 이가 오스트리아의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다. 1944년에 발간된 그의 저작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은 전체주의의 성격과 위협을 유창하게 설명한 고전이다.

그는 먼저 전체주의가 내세우는 ‘계획경제’가 개인의 자유를 앗아가고 모든 권력을 소수의 ‘계획자들’에게 집중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무릇 사람들의 관심과 지식은 그들의 삶에 직접 관련된 일들에 국한되므로, 어떤 사회적 논점에 대해 상당한 지식과 뚜렷한 견해를 가진 사람은 아주 드물다. 따라서 쉬지 않고 나오는 논점에 대해서 시민의 합의를 구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계획에 참여한 소수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결정을 계획에 반영하게 된다.

권력을 쥔 소수의 이런 일방적 결정은 당연히 다른 시민의 의견이나 이익과 부닥친다. 그러나 ‘계획자들’은 그런 시민의 판단을 받아들일 수 없다. 사회의 운영에 필요한 계획은 방대한데 이익과 생각이 다른 시민의 뜻을 받아들이면 일관성 있는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그래서 뜻이 다른 시민도 계획자들의 결정을 따르도록 강요된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가 처음부터 드러내 놓고 권위주의적이었음을 일깨워 준다. 현대 사회주의의 바탕을 놓은 프랑스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자신의 이념과 정책이 전제적 정부에 의해서만 실행될 수 있다고 공언했다. 역사는 그런 공언이 정확했음을 보여 주었다.

이어 하이에크는 파시즘, 나치즘과 같은 민족사회주의의 뿌리가 사회주의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당시엔 많은 사람이 민족사회주의를 ‘우파’로 여겼다(불행하게도 이런 오류는 아직도 널리 퍼져 있다). 이런 심각한 오류는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이 집권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공산주의의 위협을 막는 보루라고 선전한 데서 비롯했고, 제2차 세계대전 뒤 소련의 선전기구에 의해 조장되었다.

그러나 민족사회주의는 사회주의에서 나왔고 공산주의와 민족사회주의 사이엔 이념과 정책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다. 둘 다 자유주의 이념과 자본주의 체제를 전체주의 이념과 계획경제 체제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민족사회주의 지도자와 추종자들은 원래 극렬한 사회주의자였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선 전체주의의 조류가 부쩍 높아졌다. 그러나 전체주의적 요소들을 실제로 판별하는 일은 쉽지 않으며, 자유주의와 전체주의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다. 그런 지식을 얻는 데 반세기 전에 씌어진 ‘노예의 길’보다 나은 책은 드물다.

복거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