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주인공 패션 따라하기 행사인 코스츔 플레이 참가자들. [동아일보 자료사진]
‘광복절에 서울 한복판에서 일본 기모노를 입고 논다고?’
오는 13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양재 AT센터에서 열리는 ‘서울코믹월드’ 행사의 한 코너인 ‘코스츔 플레이(costume play)’를 두고 만화 팬들 사이에서 민족주의 논쟁이 거세다.
흔히 ‘코스’라고 줄여 부르는 코스츔 플레이는 일반인(코스족)들이 코믹월드 등 만화 행사장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애니메이션)나 게임 속 주인공으로 분장하고 행동을 흉내 내는 놀이.
전 세계 만화시장의 60%를 차지하는 일본 만화는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때문에 코믹월드에서 코스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일본 만화 속 주인공을 따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일본 전국시대가 배경인 ‘이누야샤’, 막부 말기와 유신시대를 그린 ‘바람의 검심’, 일본 특유의 사후세계관을 다룬 ‘블리치’ 등 일본 전통 기모노 복장을 한 주인공들이 나오는 만화는 매 행사마다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까닭에 이번 광복절에 열리는 행사에서도 예외 없이 일본 만화 속 주인공으로 분장한 기모노 코스족이 몰려들 것이 예상된다.
하지만 많은 만화 팬과 누리꾼들은 “광복절에 꼭 기모노를 입어야 하느냐”며 코스족의 자제를 촉구했다.
한 누리꾼은 “코믹월드에 나온 팬시나 코스는 대략 80% 이상이 일본 것”이라며 “주최측은 그날이 광복절인 만큼 기모노 코스 등을 자제해 줄 것을 공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누리꾼도 “방학이기 때문에 지방에서도 서울 코믹에 참가하기 위해 많은 팬들이 오곤 한다”며 “몇 달을 준비한 골수팬들에게 광복절이라고 해서 일본 코스를 하지 말라는 말이 먹힐지 의문이다”고 우려했다.
닉네임이 ‘데니’인 누리꾼도 “광복절은 우리나라가 일본에게서 해방된 중요한 날인데 아무리 만화행사라고 해도 이건 아니다”며 “실정을 뻔히 알면서도 광복절에 굳이 행사를 연 주최측에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반면 “만화 행사에 과민반응 한다”, “코스족들이 일장기 들고 뛰어다니면서 ‘일본최고!’ 라고 외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만화가 좋아서 따라 입는 것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의견도 일부 있었다.
이에 대해 코믹월드측 조윤희 팀장은 “당초 주말인 13~14일에 행사를 개최하려고 했으나, 방학이라 그런지 참가 동아리가 폭주했다”며 “미처 참가 신청을 하지 못한 동아리들이 하루를 더 연장해달라고 요구하는 통에 하는 수 없이 광복절인 15일까지 행사를 연장했다”고 밝혔다.
그는 “하루 만 여명(매표소 집계)이 코믹월드 행사장을 찾고 있고, 행사장에 들어오지 않고 인근 공원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코스를 하는 인구들도 많다”며 “참가자의 자율을 존중하기 때문에 놀이장소 만 마련해 줄 뿐 통제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인터넷에는 “광복절에 모 방송사에서 ‘일본 문화에 미친 우리 아이들’이라는 타이틀로 코믹월드를 집중 취재한다. 코스족들은 얼굴 조심하라”는 내용의 괴소문까지 나도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코스족 김현아(22) 씨는 “몇몇 코스족을 비난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며 “청소년 이상 연령층이 코스를 하고 즐길 한국 애니메이션 작품이 없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만화가 인기를 얻기 위해선 TV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 방송국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작품 밖에 제작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코믹월드 : 일본계 법인 ㈜에스이테크노 주최 하에 아마추어 만화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교류하는 것을 목적으로 생겨난 국내 최대 만화 축제. 1999년 제1회 대회를 시작으로 매달 서울과 부산에서 개최되고 있다. 코믹월드에선 동아리 만화 작품 판매전을 중심으로 일러스트 콘테스트, 코스츔 플레이, 만화가 사인회, 만화 노래자랑, 성우 토크쇼 등 이벤트가 진행된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