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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코드…2000년의 비밀]고분벽화 장식무늬의 암호 풀다

입력 | 2005-08-15 03:07:00

평양 인근의 덕화리 1호분의 천장벽화에는 온갖 장식무늬들이 가득하다. 강우방 교수는 이들 장식무늬를 식물 싹이 움트는 형태, 구름 형태, 반 팔메트 덩굴무늬 형태로 분류하면서 이를 신령스러운 기를 표현한 것으로 분석한다. 사진 제공 강우방 교수


《한국미술사 연구의 권위자인 강우방(姜友邦·64) 이화여대 초빙교수가 고구려 고분벽화에 암호처럼 담긴 아름다운 상징들을 해독해 2000년 한국미술사의 숨겨진 비밀을 밝히는 글을 매주 1회 연재합니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가득 채운 덩굴, 당초, 구름, 불꽃, 용의 문양들…. 강 교수는 이 문양들이 우주의 신령한 기운(영기·靈氣)을 표현해 낸 것임을 밝혀내면서, 이러한 무늬들이 백제와 신라, 고려와 조선의 회화, 조각, 건축에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흥미롭게 풀어갈 것입니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내게는 먼먼 꿈속의 그림들이었다. 아니 고구려 자체가 그랬다. 고구려가 멸망한 지 1500년 가까이 지난 현재의 우리에게 그것은 어떤 존재일까. 나는 신라 천년의 미술에 중점을 두고 연구해 왔다. 통일신라가 당(唐)의 영향 아래 화려한 문화를 꽃피우며, 그것이 그 이후 전개되는 한국문화의 모태임을 확신했었다. 그러나 최근 4, 5년 동안 불상 광배의 무늬와 관련하여 고구려 고분벽화를 살피면서 나의 미술사 연구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됐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여러 주제들 가운데 가장 소홀히 다루었던,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무늬들, 고구려 고분벽화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아니 고구려 고분벽화 전체를 지배하는 암호(暗號)같은 무늬들을 해독하는 동안, 고구려 미술은 지속적이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화려하게 꽃피웠을 뿐만 아니라 지금의 우리 마음속에 생생히 살아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한국미술사의 열쇠 고구려 코드

그런 유전인자 같은 것이 우리에게 있기에 벽화의 암호 같은 무늬가 해독되고, 고구려 미술의 정신이 맥맥이 흘러왔음을 인식하게 된 것이리라. 그 후로 고구려 고분벽화의 암호 같은 무늬들의 코드로 불상 광배의 문제가 풀렸고 사원 목조 건축의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공포(공包)의 형태적 기원과 상징을 밝힐 수 있었다. 또 삼국시대 불상의 천의(天衣), 보관(寶冠),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 및 왕비의 금제 관식(冠飾), 통일신라의 와당, 고려시대의 도자기 무늬와 금속공예의 무늬, 조선시대 회화의 비밀이 풀렸다. 그것은 내 학문 편력에서 가장 중대한 개안(開眼)의 체험이었다. 꿈이 현실로 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장식하는 수많은 무늬들은 새싹이 돋아나면서 도르르 말리는 형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는 사진 속 호박 덩굴처럼 자연상태의 식물에서도 많이 관찰되는 현상이다. 강우방 교수는 영기무늬가 이런 원초적 생명력을 표현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뿐만 아니라 고구려 코드를 통해 중국과 일본 미술을 읽을 수 있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그리스, 로마 이래의 서양 미술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코드는 중국 지린(吉林) 성 지안(集安)과 평양 두 곳에 밀집한 고구려 벽화에서만 추출해 낼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 무늬 16가지

이제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명품들의 본질을 그 코드로 밝히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 식민지 미술사관의 답습으로 막혀진, 그리고 잘못된 연구 방법으로 가려진 우리 미술의 본질이 서서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뭔지 알 수 없는 무늬들을 대체로 구름무늬나 인동덩굴무늬로 분류하는 데 그쳤을 뿐 별다른 해석이 없었다. 그러나 고분벽화는 훨씬 많은 종류의 성격이 다른 무늬들로 가득 차 있으며 대략 16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그 가운데 연속무늬 몇 가지 즉, 추상무늬, 파상무늬, 잎무늬, 덩굴무늬, 팔메트 덩굴무늬(좌우대칭의 잎을 가지고 생명을 표현한 중동지역에서 유래한 상징적 식물 무늬. 인동초·忍冬草나 당초·唐草 등으로 알려져 있으나 형태가 다르다) 등의 전개과정을 살피며 그것이 신령스러운 기(氣)를 형상화한 것들임을 증명하게 될 것이고, 단편적 무늬들 역시 같은 것임이 자연히 풀리게 될 것이다.

○영기(靈氣)무늬의 발견

무덤은 우주의 축소다. ‘노자(老子)’에는 동양의 우주관이 웅대하게 펼쳐져 있다. 우주 생성관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우주는 처음 혼돈이었는데 그 역동적 혼돈에서 으뜸가는 하나(一元)의 기가 생겨나고 그 하나의 기는 음기(陰氣)와 양기(陽氣)로 나뉘며 그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어 만물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삼라만상이 비로자나 아닌 것이 없다거나, 이 세계에 성령(聖靈)이 충만해 있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우주에 충만한 기 혹은 힘, 혹은 생명력은 우주의 축약인 무덤 안에 여러 무늬로 표현된다. 그러한 기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기 때문에 여러 형상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무늬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으니, 전체적으로 역동성을 느낄 수 있으며 무늬에서 파생되는 생명의 싹이 빛을 발하거나 파장을 내기도 한다는 점이다.

○생명의 싹

가장 시대가 이른 357년에 축조된 황해도 안악 3호분 고분벽화의 무늬를 보면 언뜻 구름 같기도 하다(그림①). S자 무늬가 서로 얽혀서 전개되는데 무늬 끝 부분에 둥글게 볼록볼록 튀어나온 것이 있고 그곳에서 털 같은 것이 뻗쳐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 둥근 것이 분리되어 양옆으로 역시 털 같은 것이 뻗쳐 나오며 나는 모습을 띠고 있다. 구름무늬로 분류되고 있으나, 이것은 신령스러운 기, 즉 영기무늬를 구름모양으로 나타낸 것이지 구름이 아니다.

차차 알게 되겠지만 볼록볼록 둥근 것은 ‘영기의 싹’이요, 그 싹에서 생명의 빛이 발산되는 형상이다. 일본에서는 운기문(雲氣文)이라 부르고 있으며 우리도 그에 따르고 있지만, 운기문이라 하면 구름만을 연상하게 되므로 가급적 피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영기무늬는 불꽃무늬, 팔메트무늬, 구름무늬 등 여러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라고 하면 종교나 사상에서 쓰는 추상적인 성격을 띠므로 조형화된 기를 영기라 부르고자 한다.

○식물 형태로 변화

덕흥리 고분(408년)의 영기무늬는 더 연속성을 띠어 파상문을 이룬다. 역시 붕긋붕긋한 둥근 돌기들이 있는데 식물이 싹 틀 때 끝이 도르르 말리는 영기의 싹이다(그림②). 5세기 말 쌍영총의 무늬는 앞서 보아온 둥글게 돌출되거나 점으로 단순화된 것이 본질적으로 영기의 싹임을 명료히 보여준다. 구름무늬 같기도 하고 파도무늬 같기도 하다(그림③). 그런데 이러한 영기문은 식물무늬로 변하기도 한다.

5세기 말의 안악 2호분의 무늬는 어느 특정한 식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잎처럼 표현하여 훨씬 율동감을 띠고 있다(그림④). 강서중묘의 무늬는, 팔메트 무늬를 반으로 갈라서 그 반쪽만을 취하여 연속무늬로 만든 반(半) 팔메트 덩굴무늬로 발전한다(그림⑤). 역시 빛나는 영기가 여기저기서 싹트고 있다. 그리고 그 갈래에서 연꽃잎들이 생겨나고 있다.

진파리 1호분의 무늬에 이르면 매우 복잡하게 전개된다(그림⑥). 선으로 된 영기의 싹무늬가 커지고 꼬리가 길게 되어 반복되고 있는데 그 무늬를 자세히 보면 빛이나 파장이 일기도 하고, 조금씩 다른 형태의 영기 싹이 돋아나기도 하고, 어떤 것은 그 줄기에서 독립하여 조금 큰 면(面)으로 된 영기무늬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물무늬로 진화

이러한 무늬는 점점 단순화되어 복잡한 무늬와 공존하다가 점차 영기의 싹이 사라진 반 팔메트 덩굴무늬만 남게 되며(그림⑦) 그 후 이러한 무늬가 광범위하게 오래도록 쓰인다. 그러니까 이러한 무늬만 보아 온 우리는 단순한 장식무늬로 알고 있을 뿐 근본적으로 영기무늬임을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신비로운 우주관, 생성관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영기무늬는 식물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두 마리의 용이 어울려 퉁구 사신총의 덩굴처럼 전개되는 경우도 있다(그림⑧). 5, 6세기의 덕화리 1호분의 천장에 가득 그려진 단편적인 영기무늬들은 지금까지 설명한 영기무늬의 속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 무늬들은 영기의 싹들을 여러 형태로 변주시킨 것들이다.

자, 이제 우리는 이 몇 가지 코드를 기억해 두고 한국미술이 어떻게 전개되어왔는가 그 긴 여정을 떠나 보기로 하자.

강우방 이화여대 초빙교수

:강우방 교수는:

40여 년간 한국미술사 연구에 매진해 왔으며, 신라의 불교미술 연구, 특히 석굴암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독자적인 연구 방법론, 깊이 있고 철학적인 통찰력, 빼어난 미문(美文)으로 정평이 나 있다. 최근 수년간은 고구려 미술의 근원과 의미를 추적하는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서울대를 거쳐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술사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7년부터 국립경주박물관 관장을 지냈으며 2000년 9월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초빙교수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