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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홍찬식]노인의 생산성

입력 | 2005-08-15 03:08:00


한국은 ‘사오정’(45세 정년)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직장인의 퇴직연령이 낮아지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에선 거꾸로 노인 취업이 확대되는 추세다. 미국에서 1995년 이후 새로 취업한 사람 가운데 22%가 55세 이상이다. 65∼69세 미국 남성 가운데 ‘일하는 사람’은 1994년 27%에서 2004년 33%로 늘었다. 서점체인 보더스그룹의 경우는 50세가 넘는 직원이 1999년 6%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16%나 된다. 영국의 어느 슈퍼마켓그룹은 50세 이상 인력을 1만 명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들 기업이 국가의 복지 정책을 거들기 위해 노인 채용을 늘린 것은 아니다. 노동생산성에서 노인이 젊은이들에게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철저히 검증해 보고 내린 결론이다. 물론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추진력으로 승부하는 직종에선 50대 이상이 밀린다. 반면에 차분한 판단과 주의력이 필요한 직종에선 나이든 쪽이 오히려 일을 잘한다는 것이다.

▷노인 인력은 다른 장점도 갖고 있다. 이직률과 결근하는 비율이 낮다. 3만2000명의 직원을 거느린 미국 보더스그룹에서 50세 이상 직원의 이직률은 30세 이하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자꾸 직원이 바뀌는 것보다 고객에 대한 서비스나 운영의 안정성 면에서 훨씬 낫다. 노인은 다들 직장생활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업무를 가르치는 데 필요한 교육비와 시간도 적게 든다.

▷우리나라에서도 노인 취업이 상대적으로 활발하다. 올해 취업자 가운데 85%가 50, 60대인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들이 노인 인력의 장점에 눈을 돌린 단계는 아직 아니다. 직장에서 한꺼번에 밀려난 퇴직자들이 급여와 근무조건 등의 기대치를 낮춰 열심히 일자리를 찾은 결과로 풀이된다. 기업들로서는 ‘확실한 직장’을 선호하는 젊은 연령층보다 덜 부담스럽다. 인구의 고령화가 빨라질수록 노인 일자리는 더 많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청년 일자리가 줄어도 안 되니 고용문제는 이래저래 난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