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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전문가 3인이 본 ‘백건우의 베토벤’

입력 | 2005-08-17 03:05:00

'건반음악의 신약성서'로 불리는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곡 녹음에 도전한 백건우 씨.-사진제공 유니버셜뮤직


건반음악의 역사상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구약성서’,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전 32곡은 ‘신약성서’로 불린다. 음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의 사색과 명상, 이상과 격정을 모두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피아노 대가 중 이른바 메이저급 음반사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녹음했거나 녹음 중인 사람은 다니엘 바렌보임, 알프레드 브렌델, 리처드 구드 등을 간신히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바로 이 목록에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백건우(59) 씨가 자신의 이름을 더한다. 그가 데카에서 녹음한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집이 오랜 기다림 끝에 모습을 드러낸 것.

3차례에 걸쳐 발매될 전곡 전집(전 10장) 중 1차분으로 베토벤 중기 소나타집(16∼26번·전 3장)이 23일 한국에서 발매될 예정이다. 피아니스트, 음악칼럼니스트, 피아노 전문지 편집장 등 세 사람이 미리 음반을 듣고 의견을 알려왔다.

○ 김주영(피아니스트)/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중용의 덕을 갖춘 베토벤이다. 음색이나 구성, 악보 그대로의 원전성(原典性) 어느 것도 과도하게 강조하지 않고 자연스러워 즐겁고 건강한 연주가 펼쳐진다.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는 것은 중량감이 실린 묵직한 타건과 쭉쭉 뻗는 직선적인 프레이징(분절법·分節法) 처리다. 큰 스케일의 베토벤 상이 잘 살아난다. 두 번째 특징은 이와 대비되는 우아함이다. 특히 느린 악장에서 우아함이 두드러진다.

세 번째로 그의 해석은 인간적이다. 백건우라는 인간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베토벤의 원형적 정서에 담긴 인간적 정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너무 달콤한 리처드 구드나 기복이 적은 스티븐 비숍 코바세비치의 연주에 비해 훨씬 인간적으로 들려온다.

○ 이인해(월간 ‘피아노음악’ 편집장)/완벽주의자

음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짚어가는 백 씨는 완벽주의자다. 단단한 구성력과 깊은 통찰력으로 치밀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소나타 제17번 ‘템페스트’에서는 확고한 조형성과 음 하나하나가 명료해 빈틈이 없다. 21번 ‘발트슈타인’에서는 명쾌한 타건으로 서정적이고 투명하면서도 화려한 연주를 펼친다.

소나타 제23번 ‘열정’에서는 음의 밀도와 진지한 표현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다. 터치는 차가운데도 뜨거운 불꽃이 튄다. 소나타 제26번 ‘고별’에서 이어지며 연주되는 2, 3악장…. 슬픔은 절제되고 기쁨은 폭발한다. 리듬에 생동감이 넘쳐 베토벤다운 의지와 자유스러움이 잘 드러나고 있다.

○ 박제성(음반 칼럼니스트)/개성적이고 독창적이다

개성적이고 독창적이며 역사적인 베토벤 소나타집이다. 백 씨는 이 음반을 통해 서구의 음악언어를 한국인 고유의 내면세계와 음악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열정’과 ‘발트슈타인’ 소나타에서 그는 냉정한 분석력 뒤에 뜨거운 열정과 예민한 다이내믹(강약대비)을 유감없이 분출시킨다. 중기 소나타 중 후반기에 속하는 작품에서는 동양적인 정중동의 아름다움에서 기인하는 소리 없는 역동성과 ‘이상의 세계를 탐구하는 선비’를 연상시키는 듯한 꼿꼿한 기백도 엿볼 수 있다.

29번 ‘하머클라비어’ 소나타에서는 여백의 미가 주는 푸가의 독특한 균형미와 3악장의 여유로운 서정미를 베토벤 고유의 음악언어로 녹여 내고 있다.

백 씨의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집 2차분(초기 소나타)은 2006년 가을에 3차분(후기 소나타)은 2007년 봄에 발매될 예정이다.

9월 14일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는 그가 ‘열정’ 소나타 등 소나타 4곡을 연주하는 리사이틀이 열린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