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짓는 일 치고 사람됨의 화신(化身) 아님이 없다. ‘그 사람에 그 그림(其人其畵)’이란 말도 그래서 생겼다.
오주석의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은 조선시대 화원(畵員)의 사람됨에 견주면서 그들 그림 11점의 아름다움을 파헤친 미술역사서다. 단원 김홍도와 공재 윤두서의 그림은 2점을 다룬 까닭에 살펴본 화가는 모두 아홉 분이 된다.
화가의 사람됨에는 그가 꾸었던 달콤한 꿈도, 그가 처했던 아픈 현실도 녹아있기 마련이다. 자화상으로 유명한 공재는 ‘진단타려도(陳단墮驢圖)’를 통해 절대군주에게 치세를 고대하는 백성의 꿈을 대변하고 있다.
그림의 정경은 난세에 시달리던 중국 선비 진단이 좋은 군주가 나타났다는 깜짝 소식에 환호작약하다가 그만 타고 가던 말에서 떨어졌음에도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모습이다. 선비 얼굴은 공재 ‘자화상’에 나오는 바로 그 모습인지라 선비는 화가 자신을 말함이고, 치세를 갈망하는 선비의 소망에 화답하는 화제(畵題)는 숙종 임금이 직접 적었다. 이런 내력 규명이야말로 요절한 오주석(1956∼2005)의 집념이 일군 업적 하나다.
민주화 시대보다 만남에 금기가 더 많았을 왕조시대에 삶의 애환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지기가 있었다면 그 한평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겠다. 조선시대 선비문화가 그렇게 갈구해 마지않던 ‘시서화 삼절’의 진정한 표본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는 그림붓을 든 심경을 적은 글 덕분에 유명세가 높아진 그림이다. 잘나갈 때는 주위가 북적대지만 벼슬길이 떨어지면 세상인심은 멀어지는 법인데도 어쩌다 변치 않는 우정을 만난 비감(悲感)이 내용이다.
시서화 삼절은 선비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중인 처지였던 단원 또한 진정한 시서화 삼절, 아니 그 이상이었다.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에 적은 화제가 두보(杜甫) 최만년의 율시에서 따왔음을 밝혀내어 단원의 시재(詩才)를 증명했다. 게다가 지음(知音)이었음도 마저 밝혀 그를 시서화악(詩書畵樂) 사절(四絶)이라 부름이 옳다고 저자는 열변한다.
‘그 사람에 그 그림’이란 말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사람에 그 글’임도 실감한다. 치열한 머리의 소산인 글인데도 따듯한 마음의 사랑이 가세해서 읽기가 여간 푸근하지 않다.
오주석의 옛 그림 사랑은 “만약 하늘이 꿈속에서나마 소원하는 옛 그림 한 점을 가질 수 있는 복을 준다고 하면 나는 주상관매도를 고르고 싶다”는 독백에서 절정에 달한다. 이 지경에서 그림 그리기의 기쁨이 ‘왕조 최상위 벼슬 삼공과도 바꿀 수 없다(三公不換圖)’ 했던 단원의 자부심은 이 책 저자에게 더욱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 되었다.
세한도 그림 속의 집은 유배지 제주의 초가가 아니라 중국집인 것도 아쉽고, 그림 자체보다 뜻을 적은 글로 유명하게 됐음도 흠이라는 날카로운 비판을 나는 기억한다. 하지만 그림과 글은 같은 뿌리인 까닭에 뜻과 내력을 모르면 무의미하기 십상인 우리 옛 그림을 전인미답의 경지에서 그 문예적 위상을 밝혀냈음은 사계가 오래 기억할 이 책의 미덕이다.
마침내 총론서로 일관하던 우리 전통회화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린 각론 수작(秀作)이 되었다.
김형국 서울대 교수 도시계획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