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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피플]북한 다큐 ‘어떤 나라’를 말하다

입력 | 2005-08-18 03:08:00

‘어떤 나라’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집단체조에 참가한 박현순(13·모란봉 1중학교 4학년) 김송연(11·모란봉 1중학교 2학년) 양의 일상을 담은 대니얼 고든 감독의 다큐멘터리 ‘어떤 나라’(아래 사진)에 대해 김일성대 출신인 본보 주성하 기자(왼쪽)와 고든 감독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박 양은 “공놀이를 잘하는 체조선수를 구해 달라”는 고든 감독의 요청에 따라 북한 당국이 추천한 인물이며, 김 양은 박 양과 절친하게 지내는 이웃의 소녀로 고든 감독이 (북한 당국의 허가를 거쳐) 섭외했다. 김미옥 기자


한 사람은 성공을 위해 북한에 들어갔고, 다른 한 사람은 성공을 위해 북한을 나왔다. 두 사람은 모두 북한의 진실을 알고 있노라 확신한다는 점에서 일치했다. 북한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 영국인 대니얼 고든(33) 감독. 그가 17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동숭아트센터에서 탈북자 출신인 본보 주성하 기자와 만났다.

고든 감독은 대집단체조(매스게임)에 참가하는 평양에 사는 두 여학생의 연습과정과 하루하루의 생활을 밀착해 찍은 다큐멘터리 ‘어떤 나라(원제 A State of Mind)’와 1966년 런던 월드컵축구대회에서 8강 진출 신화를 이룬 북한 팀의 이야기를 담은 ‘천리마 축구단(원제 The Game of Their Lives)’의 국내 개봉(26일)을 앞두고 방한했다. 김일성종합대를 졸업한 주 기자는 2001년 탈북해 이듬해 대한민국으로 온 뒤 2003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국제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주 기자는 “북한에도 밥을 남기는 아이들이 있다고 하면 여기선 놀라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북한에 대해 모른다. 평양 사람들의 집 안까지 카메라를 들이댄 것은 사실주의적이고 감동적이었다. 이건 평양에서 7년을 살았던 내가 보증하는 평가다”라고 입을 열었다.

주 기자는 분위기를 바꿔 “‘어떤 나라’를 과거 북한 집단체조에 직접 참여한 경험이 있는 탈북여성과 함께 보았다”며 “그 여성은 자기는 얻어맞으면서 집단체조 훈련을 받았는데 그런 장면이 안 나왔다며 섭섭해 하더라”고 뼈있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고든 감독은 “아마 엘리트급 선수들의 집단이라 내가 (구타를) 못 보았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어떤 나라’에 등장하는 13세 현순이와 11세 송연이는 여느 나라의 10대처럼 학교에 지각을 하고, 체조연습이 지겨워 ‘땡땡이’를 치고, 부모의 잔소리를 지겨워하고, 언니가 군대에 간 뒤 “내 방이 생겨서 무척 좋다”며 기뻐한다.

“북한 당국자들에게 결코 내가 속이려 하거나 꼼수를 두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게 가장 어려웠죠. 북한 사람들의 집단적 정서가 이해되기 어렵겠지만 그들과 함께 있으면 그럴 만큼의 절실한 감정적 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고든 감독)

주 기자는 영화 내용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아버지가 김일성대 물리학 교수인 송연이네 집에서 애완견을 키우더군요. 평양에서 애완견을 사려면 가격이 최저 400달러(약 40만 원)는 됩니다. 이 금액은 현재 김일성대 교수 월급 약 300개월치에 해당합니다. 혹시 친척이 일본에 있어서 매달 송금해 주는 게 아니라면, 깜짝 놀랄 만한 일입니다.”(주 기자)

“나는 평양 거리에서 애완견을 많이 보았습니다.”(고든 감독)

“‘자본주의적 방식’이라고 통제했던 과거와 달리 애완견이 이젠 부의 상징으로 통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주 기자)

“글쎄요. 개들 품종은 별로 안 좋던데요.”(고든 감독)

“그럴 겁니다. 개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들어가는 거니까요.”(주 기자)

대화가 막바지에 이르자 주 기자는 “이 다큐멘터리는 평양에서도 아주 핵심적인 구역에서 촬영된 건데 혹시 지방에서 찍을 생각은 안 했습니까? 당신이 지방에 사는 두 아이의 일상을 찍는다고 한다면 북한 당국이 허가해 주었을까요?”라고 물었다.

“사실 북한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자금 조달이 너무 어려워요. ‘정치적으로 민감하다’ 혹은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돈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죠. 자금 문제만 해결되면 북한의 지방에도 접근할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고든 감독)

최근 북한으로 넘어간 미군 병사의 이야기를 다룬 세 번째 다큐멘터리 ‘크로스 더 라인(Cross the Line)’의 촬영을 북한에서 마친 고든 감독은 “이번이 북한에 대한 마지막 다큐멘터리가 될 것 같다”면서 주 기자와 뜨거운 작별의 악수를 나눴다.

정리=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