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식물 대통령’이라도 되고 싶은 심정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회의에서 요즘 자신의 심경을 격하게 토로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최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우정사업본부 민영화법안이 무산되자 정치생명을 걸고 중의원을 해산한 것을 거론하면서 “모름지기 정치 지도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질 줄 알아야 한다”는 말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등 외국의 다른 정치 지도자들이 정치적 고비에 부닥쳤을 때 진퇴를 건 결단을 통해 이를 극복했던 여러 사례도 들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이런 언급을 한 데에는 지난달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한 것이나 15일 제60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 과거사 정리 관련 발언의 진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채 정치적 법률적 논란을 야기하는 데 따른 답답함의 표현인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오죽 갑갑했으면 그런 말까지 했겠느냐. 울컥한 심정에서 마음의 일단을 토로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의 토로에 대해 대부분의 참모들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김병준 대통령정책실장이 먼저 침묵을 깨고 “저희들이 보좌를 잘 못해서 그런 것 같다”고 했고, 조기숙(趙己淑)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도 “대통령의 생각을 홍보 쪽에서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국가권력 남용의 ‘형사시효 배제’ 발언을 두고 위헌 시비가 있는 것에 대해 “전체로 보면 극히 미미한 부분인데도 위헌 시비를 걸어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 한 것에 아주 유감스럽다”며 언론 보도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