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호주대사관의 제프 투스 부대사가 자택 정원에서 아내와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들과 공을 차고 있다. 강병기 기자
《주 5일 근무제의 본격 실시로 ‘주말 여가 스킬’이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다.
주말은 활용하기에 따라 축복이 될 수도 있지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한국보다 먼저 주 5일 근무제가 정착된 미국 유럽 등에서는 이 여가를 어떻게 보낼까.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의 가정을 찾아 주말 라이프 스타일을 듣는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양옥.
더위가 한풀 꺾인 늦은 오후, 10평 남짓한 정원에서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놀고 있다. 간편한 반바지 차림의 어른이 들어서자 아이들의 입에서 환성이 터졌다. 이들은 주한 호주대사관의 제프 투스(41) 부대사와 아들 리스(6) 군, 딸 엘리자베스(3) 양.
“축구해요.” “활쏘기 놀이 해요.” “목마 태워주세요.”
아이들은 오랫동안 목을 빼고 기다리던 ‘놀이친구’가 등장한 것처럼 쉴 새 없이 아버지를 졸라댔다. 호주에서는 1948년에 주 40시간 근로제가 도입됐다. 우리보다 훨씬 앞서 주 5일제 근무가 생활화된 투스 부대사 가족의 여가 활용과 노하우를 지켜봤다.
○ 금요일은 ‘위크엔드’를 위한 준비 시간
투스 부대사가 주말을 준비하면서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금요일의 이른 귀가다. 오후 6시로 정해진 아이들의 저녁식사 시간에 맞추기 위한 것. 금요일 저녁의 음주 등 늦은 귀가로 가족의 눈총을 받는 한국 가장(家長)과는 다르다. 그는 독신자가 아니면 금요일은 주말을 위해 일찍 귀가하는 게 호주 가정의 일반적 분위기라고 설명한다.
식사 중에는 아이를 중심으로 대화를 나눈다. 리스 군은 작은 개인용 식기를 나르며 식사준비를 돕는다. 아이들은 30분간 이날 하루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한다.
요리도 자주하는 투스 부대사의 오믈렛, 리조토, 해산물 라자니아는 가족들에게 인기있는 메뉴다.
남편의 요리 중 레몬 푸딩을 가장 좋아한다는 부인 조앤 씨는 “가족 간 대화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텔레비전를 켜놓고 식사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부부는 오후 7시가 되면 20분간 아이들을 목욕시킨 뒤 동화책을 읽어준다. 아이들이 8시 반 잠자리에 들면 부부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휴식을 갖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 주말 하이라이트는 가족
투스 부대사 가족의 토요일 오전은 운동을 함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유소년 클럽에서 축구를 배우는 아들의 경기를 보기도 하고, 가벼운 조깅도 한다. 가족이 함께 수영장을 찾을 때도 있다.
점심은 주로 공원에서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있는 가족들과 바비큐 파티를 갖는다. 아이들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는 것은 주요 주말 일정 중 하나다.
“주말은 정말 바빠요. 거의 매주 아이들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참석합니다. 부모끼리 커뮤니티가 형성돼 육아를 비롯해 다양한 주제에 관해 정보를 교환합니다.”(투스 부대사)
리스 군이 애지중지하는 정원 한쪽의 금잔화는 3월 생일파티 때 받은 것이다. 얼마 전에는 토끼를 선물 받아 리스, 엘리자베스, 토끼의 경주가 자주 벌어진다.
이들은 공통의 취미를 통해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수영 독서 영화 경마 스키 조깅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즐기고 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지만 조금씩 레저 활동에 눈을 뜨고 있다. 투스 부대사는 취미는 가족의 커뮤니케이션을 좌우하는 ‘윤활유’라고 설명한다. 그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컴퓨터 게임을 하기도 한다.
이에 조앤 씨가 싱긋 웃었다. 남편은 골프를 좋아하지만 요즘 거의 필드에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에서 골프를 치려면 종일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돼 가급적 피합니다. 5주에 한 번쯤 칠까? 실력이 좋아질 리 없어요.(웃음)”(투스 부대사)
투스 부대사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가치로 여긴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직장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내는 가장 훌륭한 친구이고, 가족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어떤 시간이라도 환영합니다.”
○ 혼자만의 휴식도 가져야
주말 중 토요일 저녁은 ‘부부의 시간’이다. 부부가 함께 공연을 보거나 친구들끼리 부부 동반 모임을 갖는다.
특이하게도 이들은 자신만의 시간도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투스 부대사는 한 주에 2, 3시간쯤 꼭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고 말했다. 혼자 쇼핑도 하고, 낮잠도 자고, TV에서 스포츠 게임을 시청하기도 한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자신만의 ‘완전한’ 휴식이 가족 생활을 위한 재충전의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투스 부대사는 또 주 5일제 정착을 위해서는 정부나 사회문화단체들의 정책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가 활동을 개인에게만 맡겨둘 게 아니라, 정부나 사회단체들이 체육관이나 휴게공간 설치를 비롯한 시설 투자를 하고 비만 방지나 여가 활용 프로그램 등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