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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인간, 그 이후’…생태계 교란하면 인류도 멸종

입력 | 2005-08-20 03:03:00

6500만 년 전 멸종한 공룡과 현생인류는 지구의 ‘거대 포식자’라는 점에서 닮았다. 지금 인간이 지구환경에 끼치고 있는 폐해는 대량멸종사건 당시의 상황을 방불케한다.


◇인간, 그 이후/마이클 볼터 지음·김진수 옮김/320쪽·1만2000원·잉걸

1972년 당시 소련 지역의 빙하퇴적물을 연구하던 미국 컬럼비아대의 조지 쿠클라 박사는 닉슨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다음 빙하시대가 그 누구의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다가오고 있으며, 그것은 또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급작스럽게 찾아올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단 수십 년 만에 빙하기가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닉슨의 과학자문위원들은 이를 극비에 부쳤다.

그러나 지금 그 자문위원들은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을 후회하고 있다. 쿠클라의 경고는 실질적인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으니 말이다. 나중이 아니라 ‘바로 지금’ 대규모의 기후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새로운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구온난화는 전 지구의 해수순환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했다. 극지의 얼음이 녹아 확산되는 담수의 유입은 바닷물 농도를 바꾸어 해수순환을 교란시키고 이에 따른 기온의 급속한 하강은 빙하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 책은 생명체의 기원과 진화, 멸종에 대한 생물학 물리학 지질학 유전학 분야의 광범위한 연구결과를 훑으며 감히(?) 인간의 멸종을 경고한다.

영국의 고생물학자인 저자는 특히 6500만 년 전 공룡의 멸종에 주목한다. 공룡이 그러했듯이 지구의 거대한 포식자인 현생 인류가 지구환경에 끼치고 있는 폐해는 대량멸종사건 당시의 상황과 맞먹을 정도라고 한다.

“인류는 자기조절 시스템인 ‘지구 생명계’에 깊숙이 개입해 지구의 작동방식에 끊임없이 역행함으로써 지구 생태계를 교란시켜 임계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생물학자인 윌리엄 해밀턴은 하나의 종이 자신의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심지어 자신의 멸종까지 이끌 수 있다는 수학적 모델을 제시한 바 있다.

저자는 ‘자연은 스스로 작동한다’는 이론을 지지하지만 지금의 지구환경 위기는 점점 인간의 손이 미치는 범위를 벗어나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진화론적으로 볼 때에도 포유류는 이미 정점을 지났다. 공룡이 사라진 뒤 포유류 과의 수는 급속히 증가했으나 1000만 년 전, 500만 년 전, 200만 년 전, 그리고 1만 년 전으로 나누어 비교해보면 그 수치는 수직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제껏 진화한 생명집단 중에서 가장 복잡한 생명체가 마침내 멸종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 생물학적으로 호모 사피엔스라는 족속이 마치 진화의 분류체계에서 비켜있는 양, 그렇게 순진하게만 생각해온 것은 아닐까….” 원제 ‘EXTINCTION’(2002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