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큰스님은 19일 송광사 처소인 상사당(上舍堂) 미소실(微笑室)에서 “자신에게 속고 있는 줄도 모르고 남에게 속은 걸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순천=윤정국 문화전문기자
“자존심 앞세우면 안 돼. 자존심이 가장 위험한 거야. 내 주장만 하다 보면 중요한 일도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지.”
전남 순천시 조계산 자락에 자리 잡은 불교 조계종 21교구 본사인 조계총림 송광사의 방장(총림의 최고 어른) 보성(菩成·77) 큰스님. 19일 송광사를 찾은 기자에게 큰스님은 이 절의 수행풍인 목우가풍(牧牛家風)을 설명하며 “내가 내 코를 꿰어 나를 길들이는 게 부처님 법이고 절 공부”라며 이같이 말했다.
송광사에서 수행하던 스님 35명은 이날 법회를 갖고 하안거(夏安居·음력 4월 15일∼7월 15일 석 달간 스님들이 절에 머물며 수행하는 일)를 해제했다. 신라 말 길상(吉祥)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송광사는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1158∼1210) 이래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수선(修禪)의 근본 도량이자 승보종찰(僧寶宗刹)로 유명하다.
큰스님은 경북 경주 출신답게 경상도 사투리로 “비는 짜다리(많이) 와 쌌는데 머 때문에 왔소. 나한테 들을 게 머 있다고…”라면서도 두 시간 넘게 불교의 수행 풍토와 오늘날의 정치 사회 현실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했다.
“내 주장만 하지 마라. 내가 대통령이 돼 이것 좀 해 놓고 가야지 하는 생각 버려야 해.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자각한다면 잘못된 일을 할 수 없어.”
큰스님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전쟁 뒤 논공행상으로 조정 대신들과 싸우는 게 싫어 깨끗이 죽음을 자청한 거라며 정치인은 잔재주 부리지 말고 항상 대의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큰스님은 또 “다 지나간 일 자꾸 파 뒤집어 봐야 무슨 소용 있느냐”면서 “지금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열강들이 우리를 포위하고 겨누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케케묵은 걸 파면 뭐 하나. 앞으로 나아가야지”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든 땅에 자빠진 자는 땅을 짚고 일어서라는 말이 있는데 요즘 사람들은 땅도 안 짚고 일어나려고 한다고 나무랐다.
“패배자가 되더라도 정당한 패배자가 돼야 다음에 다시 기회가 생기는 법이야.”
큰스님은 “국민들은 지금 정치가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하는데 그럴 필요 없어. 자기 아들 딸 잘 키우면 돼. 그게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야”라고 강조했다.
큰스님은 인터뷰를 마치고 나가는 기자에게 아쉬운 듯 이렇게 덧붙였다.
“이 세상 멋지게 보고 잘 살아봐. 절대 불안하게 보지 마. 마누라가 끓여 주는 국이 짜면 물 한 컵 더 부어 먹으면 돼.”
큰스님은 이날 해제 법회를 갖고 산문을 떠나는 스님들에게 “반드시 몸을 잊고 도를 위하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하라. 물거품과 허깨비는 기약하기 어려우니 한 치의 세월도 아껴라”라는 법어를 내렸다.
순천=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