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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대한민국/21세기 新고전 50권]공간의 시학

입력 | 2005-08-22 03:03:00


상상력이라는 단어는 이제 너무나 익숙하다. 심지어 담배회사 광고에서도 우리는 상상 예찬이라는 표현을 만난다. 이성적 또는 합리적이라는 단어의 위력 앞에 기를 못 쓰던 상상력이 홀연 위광을 찾은 듯하다. 어떤 이는 이제 상상력의 시대가 왔다고 단언한다. 중요한 변화이고 중요한 지적이다. 하지만 상상력이 과연 뭔지, 상상력을 중시하게 되었다는 게 인식론의 차원에서 무슨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그 변화와 함께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자기 업적에 대해 상상력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런 표현은 자기 과시적인 게 아니다. 자기 내부에서 일어난 인식 전환의 중요성에 대해 스스로 얼마나 놀랐는지 보여 주는 말이다.

바슐라르는 애당초 과학철학자였고 데카르트 이상의 합리주의자였다. 그의 합리주의는 너무 단호하고 철저해서 데카르트의 합리주의가 획득했다고 믿은 객관성이라는 것도 결국 주관적인 오류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바슐라르 사후 푸코가 “바슐라르는 서구의 인식론 전체를 덫에 걸리게 만들었다”라고 말한 것은 그의 철저한 합리적 인식에 의해 그동안 서구를 지탱해 온 합리주의 전체가 부정되었음을 의미한다. 말을 달리 하면 과학철학자로서의 그의 인식은 서구 합리주의의 절정에서 온 인식이다. 그리고 세상만사가 그러하듯이 절정은 곧 전환점을 뜻한다.

그 전환점에서 그가 만난 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바슐라르에 의해 상상력은 객관적 진리를 획득하려는 노력을 방해하는 기능이나 비현실적인 기능을 갖는 게 아니라 놀라운 창조성을 갖는 중요한 인식의 하나로 격상된다. 인간에게는 객관화를 지향하는 의식과 몽상을 지향하는 의식이 공존하며 몽상은 객관화하는 의식을 방해하는 게 아니라 그와는 다른 현실적이고 창조적인 기능을 갖는 것이다. 상상력의 놀라운 창조성에 홀린 바슐라르는 시(詩)라는 마음의 양식을 섭취하면서 상상력에 관한 기념비적인 책을 여러 권 쓴다. ‘공간의 시학’은 ‘몽상의 시학’ ‘초의 불꽃’과 함께 그 결정판이다.

바슐라르의 공적은 상상력의 중요성을 알게 해 주었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업적에서 우리는 “인간은 ‘상상하다’라는 동사의 주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발견한다. 상상력에 관한 저술뿐 아니라 과학철학에 관한 저술들에서도 그는 합리화를 지향하는 의식도 인간의 주관성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과학의 축과 시학의 축은 인간의 각기 다른 두 영혼인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객관화를 지향하는 의식을 주관성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게 된다. 즉 상상력이 인간 정신 활동의 근간으로서 보편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가장 보편적인 것은 객관성을 담보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주관성 쪽에 존재한다는 것, 거기에 진정한 인식론적 혁명이 존재한다.

상상력을 인간 이해의 근원으로 삼으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진정한 다원적 이해의 길이 열린다. 상상력을 통하지 않고는 인간 존재의 다원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20세기 초엽에 쓰인 바슐라르의 저술들이 미래의 고전으로 오래 남아야 하고 남을 수 있는 이유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진형준 한국문학번역원장·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