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 강의 다리 공사에 강제 동원돼 전범으로 처벌 받아야 했던 기구한 운명의 조선인 청년들. KBS1은 24일 수요기획 ‘나는 전범이 아니다, 콰이 강의 조선인’을 통해 감춰진 역사의 희생자들을 드러낸다. 사진은 당시 포로 감시에 동원됐던 조선인들. 사진 제공 KBS
‘콰이 강의 다리’하면 떠오르는 것은? 윌리엄 홀든, 앨릭 기니스, 잭 호킨스의 명연기와 휘파람 소리가 멋지게 울려 퍼지는 주제가 ‘콰이 강의 행진’ 등 할리우드 전쟁 영화 ‘콰이 강의 다리’가 생각날 것이다. 1958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7개 부문을 수상한 ‘콰이 강의 다리’는 콰이 강 계곡에 태국 방콕과 미얀마 양곤을 잇는 철도용 다리를 건설했던 연합군 포로들의 실화를 기초로 만들어졌다.
그 유명한 ‘콰이 강의 다리’ 공사 현장에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KBS1은 24일 밤 12시 패전국 일본을 대신해 전범이 되어버린 콰이 강 다리 공사 현장의 조선인들의 삶과 죽음을 다룬 수요기획 ‘나는 전범이 아니다, 콰이 강의 조선인’(연출 송준기)을 방영한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군수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철도 건설(콰이 강의 다리)에 연합군 포로를 동원한다.
1942년 일본은 조선 전역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청년 300여 명을 찾아내 이들을 ‘콰이 강 다리’ 포로 감시원으로 동원한다. 이후 일본이 패망하자 조선인 포로 감시원들은 연합군에 의해 일본군으로 간주돼 전범재판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나는 전범이…’는 공사 현장에 있었던 조선인 포로 감시원과 연합군 포로의 증언을 통해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소개한다. 연합군 포로 수송을 담당했던 오행석(88) 씨, 호주군 포로였던 톰 우렌 전 호주 부총리는 인권을 무시하며 무작정 공사를 진행했던 일본군의 만행을 폭로한다.
당시 조선인의 업무는 포로 수송과 순찰 등의 단순 업무였다. 조선인은 일본인으로부터 차별과 감시를 당했고 포로들로부터는 일본인을 대신해 책임과 비난을 뒤집어 써야했다. 일본 패망 후 ‘콰이 강 다리’ 공사와 관련해 전범으로 사형 언도를 받은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은 모두 23명. 일본 정부는 자국민이 전범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포로감시원이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이었다는 사실을 밝혀주지 않고 모든 것을 조선인 개인의 잘못으로 덮어씌웠다.
제작진은 현재 일본 정부를 상대로 조선인 전범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 위해 준비 중인 조선인 전범자 모임 ‘동진회’ 멤버들을 만나 전범으로 몰린 조선인들의 억울함과 이에 대한 구제 방안을 모색한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