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사명 2005’로 명명된 중국과 러시아의 사상 첫 연합 군사훈련이 25일 서해에서의 폭격 및 미사일 발사와 산둥(山東) 반도 공수부대 낙하 훈련을 끝으로 8일간의 작전을 마무리했다.
양국은 이번 군사훈련이 국제테러에 대응한 것으로 제3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으나 훈련의 규모와 범위, 지점 선정, 동원 무기를 보면 단순한 훈련을 넘어섰다는 평가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번 훈련이 미국의 패권 확장을 견제하면서 대만해협과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한 것으로 세계 전략 지형에 중대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이번 작전이 21세기 초 강대국 간에 벌어질 ‘거대 게임(Great Game)’의 시작이라며 “미국은 물론 동북아시아 국가들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중국은 이번 작전 목표 중 하나를 ‘분리주의 무력화’, 즉 대만의 분리 독립 움직임 응징에 두고 있음을 분명히 해 양안(兩岸) 충돌과 미군 개입에 따른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가상 상황’만이 아님을 보여줬다.
또 중-러 군사훈련에 이어 10월 러-인도 연합 군사훈련도 예정돼 있고, 연말에는 미국 일본 대만이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라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어 한반도 주변에 긴장의 파고가 높아져 가는 양상이다.
▽대륙세력의 반(反)포위 전략=중-러 군사훈련은 우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진(東進)과 미일 군사동맹을 축으로 한 해양세력의 포위망 구축 전략에 대한 경고의 성격이 짙다.
러시아는 지난해 3월 동유럽 7개국이 나토에 가입한 데 이어 지난해 말 미국의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 시민혁명 등으로 전략적 완충 공간을 완전 상실했다.
중국도 지난해 미일이 대만해협을 이른바 ‘공동전략 목표’로 설정한 데 이어 최근 워싱턴 조야에서 ‘중국 군사위협론’까지 고조되자 이를 미국의 전략적 견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러시아는 이번 훈련이 러-일전쟁 100주년에 맞춰 실시된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해양세력의 승리로 끝난 100년 전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러시아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세계 군사전략의 중심축 이동=양국 군사훈련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동해와 제주도 남쪽, 중국 산둥 반도를 이동하며 진행됐다.
이는 세계 군사전략의 중심축이 아시아태평양 및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옮겨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군사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북한 붕괴와 대만 독립 등 돌발 변수로 인해 동북아가 ‘21세기의 화약고’로 변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게다가 옛 소련 몰락 후 전략적 공백 지대가 된 중앙아시아도 인종과 민족 갈등, 국제적 자원 쟁탈전이 격화되면서 ‘유라시아의 발칸’으로 떠오를 조짐이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중-러 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간에 군사적 긴장과 충돌 국면이 조성될 가능성이 크다.
▽미일의 대응=미국은 훈련 기간 중 군사위성과 EP-3 전자정찰기, 태평양함대의 로스앤젤레스급 핵잠수함 등을 동원해 치열한 첩보전을 전개할 만큼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은 지난달 ‘중국 군사력 평가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미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 1만2000km의 둥펑(東風)-41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사거리 8000km의 핵 탑재 잠수함 발사 미사일인 쥐랑(巨浪)-2를 실전 배치했으며 이는 아태지역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경고했었다.
중-러 군사훈련에 위협을 느낀 일본은 최근 무인정찰기 구입 계획을 밝힌 데 이어 미 보잉사로부터 KC-767 공중 급유기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21일 영국의 제인스디펜스 위클리가 보도했다.
일본이 공중 급유기를 도입할 경우 항공자위대의 주력인 F-15의 작전 반경이 대폭 확대된다.
베이징=황유성 특파원 yshwang@donga.com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 동원된 양국 부대-무기는
러시아는 25일 중국과의 사상 첫 연합 군사훈련을 끝내고 훈련에 참가했던 Tu-22M3 백파이어와 Tu-95MS 베어, Tu-160 블랙잭 등 전략폭격기를 중국군에 공개했다. 중국에 대한 무기 판촉을 위해서였다.
블라디미르 미하일로프 러시아 공군사령관은 훈련 기간에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중거리 폭격기 Tu-22M3와 Tu-95 등 2개 기종을 중국에 판매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중국군이 Tu-22M3와 Tu-95를 보유하게 될 경우 대만 한국 일본 등에 대한 공격력이 대폭 강화된다는 점에서 주변국의 우려를 사고 있다.
훈련에 동원됐던 러시아 전략폭격기들은 러시아 공중 핵 타격을 이끄는 ‘3두 마차’로 불린다.
Tu-22M3 백파이어는 1980년대 미국이 ‘소련 위협론’의 증거라고까지 얘기했던 초음속 폭격기다. 대륙간 폭격보다는 전선(戰線) 공격용이지만 공중급유를 받을 경우 미국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다. 생산 수량은 약 270대로 추정된다.
미국의 B-52 폭격기에 대응해 1979년 제작된 Tu-95MS 베어는 최대 시속 925km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프로펠러 항공기다. 북극을 횡단해 미 본토의 군사기지를 타격할 목적으로 설계됐다.
Tu-160 블랙잭은 미국의 B-1 폭격기에 대항해 미국 본토를 직접 공격할 수 있는 러시아 최초의 장거리 제트폭격기다.
또 이번 훈련에는 양국의 최정예 부대들이 참가했다. 러시아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모항으로 한 태평양함대와 제76 공수사단, 중국에서는 칭다오(靑島)에 기지를 둔 북해함대와 지난(濟南) 군관구의 예팅(葉挺) 기계화부대가 주력이었다.
태평양함대는 6만 명의 병력과 핵잠수함 35척을 비롯한 잠수함 49척, 순양함 구축함 등 군함 400척, 전투기 177대 등 막강 전력을 자랑한다.
북해함대는 6척의 핵잠수함을 보유해 중국 해군 최강의 전력을 자랑한다. 작전 해역은 장쑤(江蘇) 성 이북의 서해와 보하이(渤海) 만이며 수도 베이징(北京)으로 통하는 해상로를 방어하고 미일의 해상 위협에 대응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베이징=황유성 특파원 ys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