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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외국인 My위크엔드]푸르덴셜투자증권 크리스토퍼 쿠퍼 사장

입력 | 2005-08-26 03:58:00

크리스토퍼 쿠퍼 푸르덴셜투자증권 대표(오른쪽 두번째)가 부인과 아이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큰 아들 제이콥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변영욱 기자


《크리스토퍼 쿠퍼(37) 푸르덴셜투자증권 대표는 13일 여름휴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먼저 출발해 미국 뉴욕에 있던 가족과 만난 뒤, 캐나다 밴쿠버에서 지인의 별장을 빌려 휴가를 보냈다.

“아주 오붓하고 즐거운 휴가였습니다. 보고 싶었던 막내와 함께한 첫 휴가여서 더욱 의미가 깊었어요.”

그는 변호사인 부인 아날리사(37) 씨와의 사이에 제이콥(7) 아드리아나(5·여) 제리드(9개월), 2남 1녀를 두고 있다.》

아이는 짐이 아니라 축복이다

'늦둥이’가 귀엽기는 ‘미국 아빠’도 마찬가지다. 막내가 화제에 오르자 반색을 하며 회식에서 있었던 일을 소개했다.

“한국 가정에서는 아들-딸-아들 순서로 2남 1녀의 자녀를 둔 것을 이상적으로 꼽는데 바로 내가 그렇죠.”

그는 최근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큰 기쁨이자 엄청난 보상을 준다”며 “BMW 대신 더 작은 차를 타고 다닌다. 그러면 되는 게 아닌가. 경제적인 이유로 아이를 포기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아빠는 이야기꾼

그도 여느 서양 가정의 아버지처럼 가족과 함께 운동을 즐기고 아이의 생일 파티 등에 자주 참석한다. 그럼에도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아이들과의 대화’다.

회식이나 일은 가급적 주중에 끝내고 금요일 오후에는 일찍 귀가한다. 아이들이 ‘이야기꾼’으로 인정하는 그를 몹시 기다리기 때문이다.

“기존 이야기에 역사적 배경과 인물을 바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직은 아서왕이 가장 인기가 높은데 요즘에는 슈퍼맨, 배트맨, 로빈, 원더우먼 등 슈퍼 히어로들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얘기를 섞다 보면 때로는 등장인물이 20명이 넘을 때가 있어요. 그래도 아이들이 ‘누구는 왜 안 나와’라고 묻는데, ‘그 친구는 휴가 갔다’고 말합니다.”(웃음)

TV 시청은 집에서 ‘규제 대상’이다.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볼 때 빼고는 거의 꺼져 있다. TV는 가족의 대화를 단절시키고, 아이들의 자유로운 두뇌 활동을 막는 ‘머릿속에 붙은 껌’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게임도 아이들이 등교할 때 차 안에서만 하게끔 한다.

하지만 정신적, 신체적으로 나쁜 게 아니라면 아이들에게 선택권과 노력에 대한 보상을 주려고 한다.

“아침 학교 갈 때 입을 옷은 아이들이 결정하도록 합니다. 무더운 한국의 여름 날씨에 긴소매 옷을 고를 때도 있어요. 하지만 땀 흘린다고 아이가 다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냥 둡니다. 더운 날 한번 고생한 뒤에는 알아서 합리적으로 선택하더군요.”

얼마 전 큰아들 제이콥이 무려 20권의 책을 들고 오더니 전부 읽은 적도 있다. 대신 아이는 주말에 보고 싶었던 영화 ‘스타워즈’를 볼 수 있었다.

○ 주말에는 집 밖으로 나가라

주말에는 가족 모두가 집 밖으로 함께 나가는 게 원칙이다.

한강 공원에서 축구와 스케이트보드를 즐기거나 집 근처의 남산을 산책한다. 산책 때는 자연스럽게 가족이 사진 모델이 된다. 부인의 취미가 사진 촬영이다. 이때 다양한 포즈로 촬영된 사진들은 다시 가족이 대화를 나누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집보다는 야외에서 공통된 취미 활동을 하거나 관찰하고 느끼는 게 가족의 친밀도를 높여줍니다. ‘재미’가 사라지면 아이와 부모는 물론 부부 사이도 멀어집니다.”

토요일 오후 부부의 시간에는 외국인 커뮤니티를 통한 모임이 주요 일정으로 잡힌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7, 8개국 출신 20여 명이 부부 동반으로 자주 모인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 대형 TV로 함께 경기를 보거나 그때그때 참석자와 관련된 축하 행사를 갖는다.

○ 나의 베스트 프렌드는 아버지였다

그는 주5일 근무제의 라이프스타일이 제대로 정착되는 데 스포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미국은 미식축구 야구 축구 등 스포츠 팀이 지역마다 연령대별로 구성돼 있어 스포츠를 중심으로 아이와 학부모, 지역 사회가 결속되어 있다고 한다.

그도 어렸을 때 아버지와 고향 애틀랜타에서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경기를 관람한 일을 잊지 못한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전설적인 홈런왕 행크 애런을 비롯한 선수들의 사인도 받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이 ‘사건’은 대단한 충격과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맺은 정신적 유대와 영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아버지는 나의 ‘베스트 프렌드’였고, 나도 아이들에게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지금 아이들이 어려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제한돼 있지만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아이들이 빨리 ‘틴에이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