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사도/리처드 도킨스 지음·이한음 옮김/488쪽·1만4800원·바다출판사
맵시벌은 자기 애벌레들이 신선한 고기를 먹게끔 먹이를 죽이지 않고 침을 찔러 마비시키기만 한다.
이런 생태를 관찰한 찰스 다윈은 고통을 못 본 척하는 게 자연의 속성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은 자비롭기보다 잔혹한 쪽이며 때로 굼뜨고 서툴고 헤픈 것이다.
다윈은 이런 자연이 신의 뜻에 따라 창조됐다는 걸 이해하기 힘들었다. 다윈주의자인 영국 과학자 도킨스가 자연을 ‘악마의 사도’라고 비유한 것은 이런 데서 나왔다.
이 책은 ‘이기적 유전자’ ‘눈먼 시계공’ 등 과학적 사고방식을 대중화하는 주요한 책들을 써 온 도킨스가 종교 사회 문화 과학의 여러 이슈들에 대해 자기 관점을 뚜렷이 부각시킨 과학 산문집이다.
여기서 도킨스는 너무나 소신껏 이야기한다. 그는 ‘낙태가 살인인지 아닌지를 말할 수는 없지만, 낙태를 살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침팬지를 죽이는 데에는 살생의 개념을 적용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일관성이 없다’고 본다.
그는 인간을 유인원에서 벼락출세한 존재로 보고 있다. 인간이 많은 동식물들에 비해 아주 불리한 육체적 취약성을 갖고 있지만 ‘우주를 내면화할 수 있다’는 하나의 탁월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본다. 이 책은 그 같은 경쟁력, 곧 유연한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본 세계의 면면을 다루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지적인 사기’임을 드러내는 실험을 한 앨런 소칼의 책에 대한 서평, 자신의 라이벌 다위니스트였던 스티븐 굴드에게 보내는 편지 등은 도킨스라는 스타 과학자가 가지고 있는 유머 감각과 자신만만함, 솔직함을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