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6일 오시마 쇼타로 신임 주한 일본대사의 신임장을 받기 위해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 들어서고 있다.석동률 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권력을 통째로 내놓는 것도 검토하겠다’는 25일 발언은 이전까지의 유사한 발언에 비해 수위가 가장 높은 것이다.
노 대통령은 2003년 10월 불법 대선자금 문제가 불거졌을 때에도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하는 등 대통령 직을 건 모험적 제안을 내놨다. “대통령 직 못 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 “정계를 은퇴할 용의가 있다”는 등 극단적인 발언도 여러 차례 했다.
그러나 이전의 발언들은 위기 상황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 표현의 성격이 강했다는 점에서 대연정을 통해 한나라당에 권력을 넘기겠다는 최근의 제안과는 맥락이 다르다.
최근의 발언은 ‘권력이양’에 강조점이 찍혀 있다. 그것도 시간이 갈수록 그 내용이 구체화 되고 강해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처음 제안했을 때 노 대통령은 ‘연정을 구성한 정당에 내각제 수준의 권력을 넘기는’ 방식을 거론했다.
이를테면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국무총리를 맡고,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함께 내각을 구성하는 ‘권력 분점’ 형태였다. 하지만 25일엔 ‘권력의 전부’를 줄 수도 있다는 것으로, 훨씬 강화됐다.
이런 식의 점층법(漸層法)이라면 ‘먼저 권력을 내놓을 테니 연정하자’ 또는 ‘아예 그만두겠다’는 말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정치권에서 나온다. 한 정치권 인사는 “노 대통령은 13대 국회의원 시절 3당 합당 등에 반대해 두 번이나 의원직 사퇴서를 던졌다. 자리에 연연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TV토론에서 29%에 불과한 현재의 국민 지지도로 국정 운영을 해 나간다는 게 고심이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상황은 앞으로도 나아진다는 전망이 별로 없다.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는 여당의 참패일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가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부터 나오는 상황이다. 이래저래 노 대통령의 고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극단적 선택의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노 대통령의 권력 이양 발언을 둘러싼 이런 분석과 관측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단순히 의지를 강조하는 차원의 발언은 아니지만, 내부적으로 그에 관해 구체적인 방법론을 검토한 것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실행 계획이 없는 구상 차원일 뿐이라는 얘기다.
노 대통령의 오랜 지인인 한 여권 인사는 “일각에선 하야 선언 등 극단론까지 얘기하지만 그런 상황은 절대 없을 것이다. 권력 이양은 위기에서 권력을 지켜내겠다는 의지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도 24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임기의 절반이 지났지만, 내 목표로 보면 돌아서기 싫다. 내려가기도 싫다. 자리야 내려가도 좋지만 마지막 그날까지 더 좋은 사회를 위해 계속 밀고 가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